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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30년 전 조작된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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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미제사건’, ’희대의 연쇄살인사건’, ‘얼굴없는 살인마’ 등으로 불리며 10명의 여성 희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연쇄살인사건의 9차 사건 용의자가 특정됐다.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용의자 대신 숨진 김모양과 경찰에 의해 ‘연쇄살인마’로 조작됐다가 숨진 윤모씨(당시 19세)의 얼굴이 떠올랐다.

경향신문

연합뉴스


사건은 30여년전인 1990년 11월 16일 경기 화성시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당시 중학교 1학년인 김모양(14)이 숨진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1986년부터 발생했으나 한동안 잠잠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26개월만에 다시 일어난 것이다.

경찰은 한달여 뒤인 같은 해 12월 20일 사건 현장 인근에 사는 윤모씨(당시 19세·회사원)가 “9차사건의 범인”이라고 발표하고, 포승줄에 묶인 윤씨를 언론에 공개했다. 경찰 발표에 미심찍어하던 기자들은 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가던 윤씨에게 “범인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 우리가 도와줄께”라고 말했으나, 윤씨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아니에요. 제가 죽였어요”라고 말하고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경찰 고문에 의한 범인 조작을 의심하던 기자들은 윤씨가 ‘자신의 범행’이라는 자백에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경찰의 범인 검거 조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틀뒤 사건 현장에서 검사가 입회한 가운데 현장검증이 실시됐고, 윤씨는 범행을 재연하던 중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죽어도 좋으니 양심대로 말하라”고 소리치자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가 “제가 안죽였어요”라며 범행을 부인하고 현장검증을 거부했다. 현장검증은 아수라장이 됐고, 윤씨는 기자들에게 “형사분들이 무서워서 거짓으로 자술했다”고 번복했다.

경찰은 그럼에도 윤씨를 화성연쇄살인 9차사건의 범인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윤씨의 9차사건 살인혐의에 대해 기소하지 않았고,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됐다. 물론 다음해인 1991년 4월 마지막 화성연쇄살인 10차 사건은 또 발생했다.

19일 경찰에 의해 화성연쇄살인 9차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된 이모씨(56)는 당시 경찰 수사 발표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날 경찰 발표가 맞다면 “범행은 내가 했는데 범인은 윤모씨네”라며 경찰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에서 잊혀졌던 윤씨는 마지막 화성연쇄살인 10차사건(1991년 4월 2일)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2006년 4월 취재 과정에서 병으로 숨진 사실을 알게됐다. 당시 기자는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현장을 둘러봤다. 9차사건이 발생했던 병점 야산은 이미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0차 사건이 발생했던 화성 동탄면 반송리는 동탄신도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자는 당시 포기하지 않고 화성연쇄살인범을 쫓았던 경찰관 하승균 경정의 소회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하씨로부터 “윤씨가 경기 부천으로 이사를 가서 직장을 다니다가 지병으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다.

사건발생 29년만에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다. 용의자는 그동안 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로 지냈는데, 정작 경찰에 의해 살인범으로 조작됐던 윤씨는 세상에 없다.

경태영 기자 kye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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