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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펫로스 증후군-슬픔은 삼키는 게 아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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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만나던 열여덟 살 개와 열아홉 살 고양이가 지난 달 각각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이미 오래 전에 시력을 잃었고 잘 걷지 못했으며 병원 방문도 잦았지만, 그 반려인들도 랜선 우리 이모들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그들이 긴 휴식에 든 뒤, 반려인에게 남겨진 너비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멍. 어째선지 내 시름도 깊어 간다.

시티라이프

과한 오지랖이 아닐까 싶게 SNS을 들락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나에 비해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그들은 외려 의젓했다. 그간 고마웠다고 꼭 다시 만나자고 편지를 써서 관에 넣고, 단출하게 장례식도 치렀다. ‘걱정해 주신 인친님들, 저는 잘 지내요’라는 인사도 챙겼다. 간간이 생전의 반려동물 사진과 영상을 올렸고, “털이 안 날리니 청소가 편해졌어요”라든가 “비 오는 날 산책 걱정이 없어 좋아요”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러다 잠깐 졸다 꿈에서 고양이를 만났다는 말에, 늦은 밤 현관문을 열고 자신도 모르게 두리번거렸다는 말에, 숨죽여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며칠 전, 그중 한 반려인이 계정을 삭제했다. 희망도 눈물도 한숨도 위로도 말끔히 사라진 텅 빈 화면을 마주한 나와 인친들은 ‘우려했던 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란 반려동물을 잃은 데서 오는 우울감과 상실감을 말한다. 흔히 죄책감, 스트레스, 불면증, 현실 회피, 분노 조절 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누구는 반려동물의 체취가 밴 물건에 집착하고, 또 누구는 반려동물이 있던 공간에 눈길조차 주지 못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는 ‘죽음’이 통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문제는 그 이별을 껴안지도 버리지도 못할 때 생긴다. 지인 중 하나는 고양이를 잃은 뒤 직장을 그만 두고 잠적해 버렸고, 친구 어머니는 16년간 보살핀 개를 떠나 보내고 항우울제를 드시며 1년 만에 가까스로 칠흑 같은 터널을 통과하셨다. 수년 전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반려인 뉴스가 보도돼 모든 반려인들을 비탄에 잠기게 했다. 도대체 죽음에 따르는 이별의 슬픔은 어떻게 배웅해야 하나.

상담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떠나 보냈을 때 슬픔을 삭이거나 분노를 억누르지 말라고 조언하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는 슬픔도 분노도 죄책감도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므로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가장 중요한 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 일이라고 한다. 애도에 정해진 형식은 없다. 미처 못한 말을 글로 써 보고, 반려동물 그림도 그린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최고의 방법은 감정 표출이다. 가족과 친구에게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의 모임에도 나가 보자. 애써 말하지 않아도 이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큼 의지가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요즘은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펫로스 치유 모임을 운영하는데,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심리예술공간 ‘살다SALDA’가 개최하는 펫로스 치유 모임 ‘웰바이Well-bye’다. 프로그램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반려동물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성격과 취향, 추억 등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심리 치료에서는 쓸쓸함과 분노, 외로움을 펼쳐내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나 위기 상황을 재연하며 다른 방법도 시도해 본다. 끝으로 글을 쓰고 반려동물을 함께 추모하면서 과정을 마무리한다. 프로그램 문의와 신청은 살다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의 끝자락에는 생채기를 보듬는 숙제가 남는다. 그러니까 다 좋은데, 잘 극복하는 게 맞는데, 왜 개인의 슬픔을 입밖에 내서 말하고 누군가와 나누라는 거냐고? 슬픔도 풍화해야 하니까 그렇다. 한 번도 비바람을 맞은 적 없는 견고한 슬픔은 우리가 짊어지고 살기엔 너무 육중하다. 바람도 쐬고 비도 맞고 햇볕도 쬐며 조금씩 날려 보내는 것이 슬픔을 배웅하는 방식이다. 반려동물을 떠나 보냈다면 슬픔을 삼키려 애쓰지 말고 길 한가운데로 나와 이렇게 토해 내자. “나 많이 힘들어!” “이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96호 (19.09.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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