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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참여 의식? 엘리트주의?…9차례 대학 촛불집회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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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아크로 광장에서 열린 ‘제3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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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거취와 상관없이 부인이 투자한 펀드나 아이가 받은 장학금을 다 정리해 흙수저 청년이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해 환원하겠다.”

2일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은 연일 쏟아진 여러 의혹에 대해 "법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흙수저 청년들에게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이런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런 조 장관의 약속과 해명에도 대학가에선 장관임명식이 열린 그 날까지 촛불 집회가 이어졌다.



의혹·침묵·해명이 낳은 9번의 촛불 집회



촛불 집회를 일으킨 건 조장관 딸의 스펙·장학금 의혹이었다. 병리학 논문 제1 저자에 조씨 이름이 올라 대학 부정입학 의혹이 불거지자 고려대 커뮤니티(고파스)에선 지난달 21일 첫 촛불 집회 제안이 나왔다.

조씨가 환경대학원에서 두 학기 동안 이유 모를 장학금을 받았던 서울대도 가세했다. 서울대·고려대 학생들은 23일 첫 집회를 열었다. 조씨에게 6번의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을 준 부산대 학생들도 28일 첫 촛불 집회를 열었다.

2차 집회 도화선은 ‘침묵’이었다. 지난달 25일 조 장관은 ‘촛불 집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출근길 질문에 침묵했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당시 “저와 제 가족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제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학생들은 침묵에 분노했다.

서울대가 먼저 지난 달 28일 2차 촛불 집회를 열고, 고려대는 30일, 부산대는 지난 2일 연달아 2차 집회를 열었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의 해명은 3차 집회로 번졌다. 고려대는 7일, 장관임명식을 치른 9일 서울·부산대가 세 번째 촛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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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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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비리규명→사퇴’ 구호·주최자도 변화



집회 주최자도 바뀌었다. 서울·고려·부산대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집회를 추진했다. 부산대는 카톡방을 만들고 500여명에게 집회추진 서명을 받았다. 서울·고려대는 커뮤니티·페이스북을 활용해 집회를 제안하고 추진했다.

2차 집회는 세 학교 모두 총학생회가 나섰다. ‘학생대표들이 팔짱을 껴선 안 된다’는 학내 여론 때문이었다.

총학주도 2차 집회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서울대는 총학이 3차 집회까지 주도했지만 고려·부산대는 3차 집회부터 총학이 빠지고 학생들이 주도했다. 고려대 학생들은 ‘준비가 부족한 총학이 학생들의 분노를 대변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소극적으로 2차 집회를 이끈 총학에 불만을 터뜨렸다. 부산대는 1차 집회를 이끈 학생들이 다시 나섰다.

집회 구호도 조금씩 바뀌었다. 서울대는 1차 집회 때 조 장관의 교수직 사퇴를 요구했다. 2차 집회부터 서울대는 조 장관의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다.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 의혹에 대해 조 장관이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면서부터다. 3차 집회에선 장관사퇴도 요구했다.

고려대는 1차 집회 때 입시 비리 진상규명에 집중했다. 부산대도 딸 특혜의혹 규명에 초점을 맞췄다. 주로 학교 측에 진실규명을 요구했다. 2차 집회에선 1차 때와 비슷한 목소리를 냈지만 기자간담회와 장관 임명을 기점으로 3차 집회부터 두 학교도 조 장관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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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민주광장에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입시특혜 의혹'관련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학생들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숙환(위선과 편법)으로 별세했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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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엘리트만의 촛불집회라는 비판도



촛불집회를 두고 집단적인 엘리트 의식 표출이란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29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격이 의심스러운 자가 기득권을 누리거나, 자부심에 손상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낄 때, 굳이 집단으로 (감정을) 표출시킬 이유가 있나 싶다”며 서울·고려대생들의 촛불 집회를 비판했다. 또 한편에선 ‘조국 OUT’은 외치면서 서울대생들이 이제껏 왜 청소노동자의 죽음이나, 탈북민 모자의 죽음에 목소리를 내지 않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에 김다민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모든 청년을 대변할 수 없고, 서울대생으로 여러 혜택을 받았음을 겸허하게 인정하지만, 서울대생 전체가 기득권이라는 비판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조 장관 자녀들이 얻은 혜택과 우리의 그것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참여자 수는 3차 집회까지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대가 1800명, 고려대 750명, 부산대 460명이 모였다. 9번 집회에 평균 330명씩 모였다.

집회현장에 특정 정치성향의 사람들도 자주 보여 이른바 ‘물 반(학생반) 고기 반(특정정치세력)’이란 지적도 나왔다. 김다민 부회장은 “현실정치에서 촛불 집회를 떼어놓으려 해도 진보·보수 정치진영은 각자 원하는 대로 촛불 집회를 해석했다”고 말했다.



청년 갈라놓은 ‘조국사태’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청년들은 ‘조국사태’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청년단체 '청년 전태일'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청년은 “조국 논란을 볼수록 내 삶이 비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유명 대학에 다니고, 스펙을 쌓는 것 자체가 혜택이라 걸 인정하고 사회 불평등을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국 장관의 사퇴냐, 아니냐에 20·30세대를 가두지 말라”고도 말했다.

대학가 촛불집회를 계기로 성과와 한계가 보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관임명이란 정치적 사안에 학생·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존재감을 드러낸 건 긍정적인 현상”이라면서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학교에 소속된 학생들만 집회에 나선 건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집회 참여 학생들이 대학 서열화·입시제도 개선 등 제도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하지 못한 건 아쉬운 지점”이라면서 “선택된 소수 엘리트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촛불로 저항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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