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에너지 재벌이 신문사 지분 대거매입…"상의도 없이…" 위기의식 팽배
르몽드 기자 460여명, 신문 한면 털어 성명…"편집권 독립 협약에 서명하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 파리 본사 |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권위지 르 몽드(Le Monde)의 기자들이 신문에 공동성명을 내고 대주주들에게 편집권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기존의 대주주 중 한명이 르 몽드의 지분을 기자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체코의 에너지 재벌에게 매각하면서 르 몽드의 편집권 독립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이 신문사의 소속 기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르 몽드 소속 기자 460여 명은 11일(현지시간)자 신문의 26면 한 면 전체에 "우리, 르 몽드의 기자들은…"이라는 제목의 공동선언을 싣고 신문사의 주주들에게 편집권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성명에서 기자들은 "르 몽드 역사상 처음으로 편집국과 상의도 없이 새 주주가 결정되는 일이 굳어질 수 있다"면서 "이는 편집의 자유에 관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명에는 르 몽드의 기자 거의 전원이 참여했고 성명을 담은 상자글의 주위에 참여 기자들의 실명을 모두 기재했다.
1944년 창간된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지 르 몽드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신문으로 꼽힌다.
르 몽드의 기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신문의 지분을 대거 인수한 체코의 사업가 다니엘 크레친스키 등이 즉각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협정에 서명하라는 것이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르 몽드의 대주주 컨소시엄의 일원인 마티우 피가스는 체코의 사업가인 다니엘 크레친스키에게 자신이 가진 르 몽드 지분의 49%를 매각했다.
이 매각 조처는 르 몽드 편집국 소속 기자들과 일반 직원들, 독자 등을 주축으로 꾸려진 편집독립위원회와 사전 협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편집독립위원회 역시 르 몽드의 모회사인 '그룹 르 몽드'에 지분을 가진 소액주주다.
문제는 르 몽드의 대주주들인 마티우 피가스와 자비에르 니엘은 작년에 르 몽드의 지분에 변동이 생길 시 편집독립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는다는 구두약속을 했다는 점이다.
르 몽드의 기자들은 대주주들이 이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신뢰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주주 측은 상호 이견으로 그런 약속이 완전히 맺어진 것은 아니라면서 매각 조처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르 몽드 기자들이 소속된 편집독립위원회는 이달 초 대주주들에게 편집권 독립에 관한 협약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지만, 대주주 마티우 피가스와 새로운 주주인 다니엘 크레친스키는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대주주인 자비에르 니엘은 이 협약에 최근 서명했다고 한다.
르 몽드의 기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새 주주인 체코의 사업가 다니엘 크레친스키의 공격적인 행보다.
크레친스키는 르 몽드의 또 다른 주주인 스페인의 프리사 그룹이 가진 지분의 매입을 추진하고 있어 르 몽드의 경영권을 넘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체코의 에너지 재벌인 크레친스키는 르 몽드뿐 아니라 작년에 엘르, 마리안, 프랑스 디망슈 등 프랑스 인쇄 매체들의 지분을 대거 매입했다.
르 몽드 기자들은 이와 관련, 성명에서 르 몽드의 대주주였던 사업가 피에르 베르제가 2017년 별세하면서 남긴 유지를 다른 주주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피에르 베르제는 생전에 르 몽드에 (편집권 독립권 관련) 윤리적 약속을 했고 이 문제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에르 베르제는 프랑스의 유명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로랑(1936∼2008)의 과거 동성연인이자 패션 재벌로, 2017년 9월 별세했다.
기자들은 아울러 "새 주주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우리의 직무를 지키는 필수 불가결한 메커니즘"이라면서 "이런 보호막이 없다면 주주들과 편집국 사이의 균형을 존중하지 않는 새 주주가 들어와 프랑스 언론에서 르 몽드가 가진 특별한 위상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난을 겪던 르 몽드는 지난 2010년 피에르 베르제와 라자르 투자은행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마티우 피가스, 인터넷 사업자 자비에 니엘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대주주로 참여하면서 경영이 안정화됐다.
당시 베르제-피가스-니엘 컨소시엄은 부채 청산과 재투자 등을 위해 르 몽드에 1억1천만 유로(1천500억원 상당)가량을 쏟아부었다.
yonglae@yna.co.kr
프랑스의 유력지 르 몽드의 대주주였던 패션재벌 피에르 베르제. 2017년 9월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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