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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읊조릴수록 맴도는 시처럼 ‘인간의 도리’를 묻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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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0)시

감독 이창동(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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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등장은 곧 새로운 서사의 등장이었다. 우린 그의 영화를 통해 한국영화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특히 <밀양>(2007)과 <시>(2010)는 ‘편안한’ 서사에 익숙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며 한없는 혼돈으로 끌고 내려간다. <밀양>은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통함의 감정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여주는데, 아들을 잃은 엄마(전도연)는 종교의 힘을 통해 용서하려 한다. 그렇다면 <시>는 가해자의 입장에 선 영화다. 손자의 범죄로 인해 한 소녀가 자살했다. 여기서 할머니인 미자(윤정희)는 손자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소녀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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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건, ‘시작’(詩作)이라는 순수한 예술적 행동이 타협할 수 없는 현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 대립 구도를 통해 <시>는 <밀양>보다 훨씬 더 거칠게 모순의 현실을 드러낸다. ‘합의’라는 이름으로 억울한 죽음은 무의미하게 소멸되려 하고, 죄인들에겐 그 어떤 형벌도 가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유일하게 그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시인’이 되려는 미자다. 시를 쓰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운 건, 미자에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도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자는 시 한 편을 남긴다.

<시>는 반성을 촉구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도덕과 윤리는 무엇인가. 시를 쓴다는 것, 즉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관념에 머물지 않고 미자의 실천을 통해,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통해 관객에게 묵직한 대답처럼 전해진다.

<시>는 한국영화의 서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풍경 중 하나다. 조용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엔 끓는점 직전의 감정이 있고, 그 힘은 시로 승화된다. 이것은 타락하고 둔감한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연꽃을 피우려는 의지이며, 이 영화에 감히 ‘숭고하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이유이다.

김형석/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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