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긴 굴뚝을 빠져나온 연기가 고욤나무 우듬지를 지나 잘박거리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길 때 맥맥거리며 저녁을 부르던 어미 소의 억센 혓바닥에도 작두날에 잘게 부서진 옥수수 줄기가 가닿을 때 그즈음이면 만화도 다 끝나고 우리는 세 개밖에 안 되는 흑백텔레비전의 채널을 드륵 드르륵 돌려 대고 마당 귀퉁이에선 급히 마신 어둠 토해 내듯 울컥울컥 하얀 모깃불이 피어올랐다 둥글게 퍼지는 삼십 촉 전구 아래 모여 앉아 늦은 저녁을 먹던 날 모깃불 위에 던져진 갈맷빛 잎사귀들 마른 눈가 그렁그렁하게 하고 저녁을 다 먹고 멍석에 드러누워 찰진 옥수수 알 오물거릴 때 느려진 아버지의 부채질 사이로 잠결인 듯 들리던 계면조 진주라 천릿길을 내 어이 왔든고…… 안드로메다 그 멀고 먼 은하까지 덜컹, 덜컹, 달려가는 새하얀 연기 여름밤의 고요를 깨우며 어린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바큇자국을 남기고 간 먼 하늘의 기적 소리 그날 왜 세상은 눈금 많은 모눈자처럼 보였는지 달의 그림자 뒤에 가려진 밝은 폐허 매운 콧잔등에 얹힌 내 유년의 마지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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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추석이 좀 이른 편이다. 아직 매미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도 아침ㆍ저녁으론 선선하고 밤알도 대추알도 제법 여문 빛깔을 내기 시작한다. 아마 오늘 저녁부턴 고향으로 내려가느라 다들 분주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추석 연휴 동안에도 바쁘고 고되겠지만 휘영청 영근 달을 보며 고향 생각, 부모님 생각, 옛날 생각들을 할 것이다. "진주라 천릿길"만큼 "안드로메다 그 멀고 먼 은하까지" 말이다. 귀성이란 어쩌면 "천릿길"이든 "안드로메다"든 "유년의 마지막 풍경"이든 잊고 지냈던 탯줄을 잠시나마 다시 잇는 일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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