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베네수엘라·이란·아프간 등 곳곳서 이견
초강경파 퇴장으로 미 대외정책 방향 주목
볼턴 영향력 이미 줄어, 정책변화 크지 않을 수도
북-미 대화에는 긍정적 요소 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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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외정책에서 자신과 불화를 빚어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10일(현지시각) 전격 경질했다. 호전적인 ‘슈퍼 매파’ 볼턴 보좌관의 퇴장에 따라, 군사행동보다는 금전적 이득을 선호하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무협상 재개 가능성이 높아진 북-미 대화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나는 어젯밤 존 볼턴에게 그의 복무가 더이상 백악관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알렸다”며 “나는 그에게 사직을 요구했고 사직서는 오늘 아침 내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안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그의 제안 중 많은 것에 강하게 의견이 달랐다”고 사직을 요구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존의 복무에 매우 감사하다”며 “새 국가안보보좌관을 다음 주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찰리 쿠퍼만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대행 역할을 할 것이라고 호건 기들리 백악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전했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질 발표로부터 1시간 남짓 뒤인 이날 오후 1시30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새 행정명령에 관해 공동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 그만큼 트위터를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축출’ 발표는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볼턴 보좌관의 강경 노선을 놓고 미 행정부 안에 불협화음이 많았던 만큼, 핵심 참모들은 그의 퇴장은 예견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행정명령 관련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볼턴 보좌관의 사임으로 업무 수행이 쉬워졌느냐고 묻자 “우리는 모두 (대통령에게) 솔직한 의견을 내놓는다. 볼턴과 내가 의견이 다른 적이 많았다. 사실이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볼턴 보좌관의 사임을 몰랐느냐’는 질문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답변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고, 같이 브리핑 단상에 선 므누신 장관도 웃었다. 볼턴 보좌관의 사임은 최근 들어 공식회의 때 외에는 대화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의 ‘파워 게임’에서 볼턴 보좌관이 밀려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볼턴 보좌관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이란, 북한 등의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견해차를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방침에 반대해온 그는 최근 철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에서 배제됐다가 뒤늦게 합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봄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축출하기 위한 미국의 압박작전이 실패한 뒤 볼턴 보좌관에게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 대해서도 볼턴 보좌관은 군사공격을 주장해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였다. 북한 핵폐기 방식에 관해서도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을 자극해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수습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장거리 아닌 단거리는 문제될 게 없다고 밝힌 반면, 볼턴 보좌관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라고 공격적 입장을 취했다.
<엔비시>(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부터 볼턴 보좌관의 전임자인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정책적 조언을 구하고 ‘당신이 그립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파 볼턴 보좌관이 대외 협상력을 높여주는 측면을 효용으로 여긴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결국 그에게 쌓여온 불만을 더이상 참지 않기로 한 셈이다.
관심은 ‘볼턴 이후’의 미 대외정책이 어디로 갈 것인가다. 군사공격까지 주장하는 볼턴식 강경 노선은 힘받기 어렵게 됐다. 또한 그의 후임으로 그보다 더한 강경론자가 올 가능성은 낮다는 점에서, 미 대외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볼턴 보좌관의 영향력이 미 행정부 내에서 이미 약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퇴장이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세계의 어떤 지도자도 우리 중 누군가가 떠난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바뀔 거라고 추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에서도 최근 들어 볼턴 보좌관의 개입이 줄어든 터였다. 그는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일괄타결식 빅딜론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입하면서 ‘노 딜’을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뒤 6월 말 판문점 북-미 정상 만남 당시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고 몽골을 방문했다. 그럼에도 볼턴 보좌관의 퇴장은 북-미 대화 재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커 보인다. 북한이 그동안 폼페이오 장관과 더불어 북-미 대화의 걸림돌로 지목해온 볼턴 보좌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프랭크 엄 미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겨레>에 “북한은 볼턴 보좌관 경질을 하노이에서보다 나은 합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를 살피기 위해 미국과 다시 관여할 기회로 바라볼 것”이라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제안한 대로 9월 하순께 북한이 대화로 복귀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볼턴 보좌관은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나는 지난밤 사임을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 이야기해보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워싱턴 포스트>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나는 적절한 때에 발언권을 가질 것”이라며 “그러나 사임에 대해서 여러분께 사실을 말한 것이다. 나의 유일한 염려는 미국의 국가안보”라고 밝혔다. 쫓겨난 게 아니라 제 발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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