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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정의부(법무부) 장관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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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진의 아유레디 대한민국-37] 2019년 9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 3명과 장관급 위원장 3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그중 단연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Minister of Justice) 임명은 전 국민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권력기관의 개혁을 주도할 적임자라고 설명하면서 국민들의 넓은 이해와 지지를 당부했다.

결국 장관이 된 조국, 하지만 그간 다사다난했던 임명 과정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후보자 시절 일었던 수많은 의혹, 이와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 공소시효 만료 70분 전 극적 기소(조국 장관 배우자) 등은 지난 몇 주간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현안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8~9월을 이른바 '조국 블랙홀 정국'이라 칭해도 그리 과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사건에 관한 논의는 온데간데없고, 조국 교수와 함께 임명된 여러 장관급 인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소위 '사법개혁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는 조국 교수였기에, 현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그 자체 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그뿐인가. 오랜 기간 이 분야 개혁과제에 대해 연구해왔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그만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왔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사법개혁의 틀을 설계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청와대의 개각 발표 초기, 우리 국민들 상당수는 그의 임명에 대해 그리 큰 거부감이 없었고, 한편에서는 열렬히 지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주변 인물들과 관련한 갖가지 의혹들, "정의는 죽었다"며 촛불을 든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 연이은 '초유의 셀프 기자간담회', 그리고 관련된 수 많은 '진짜 vs 가짜' 뉴스 등은 정의를 부르짖던 멋진 조국 교수에 대한 기억을 상당부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위법 행위'냐 '도덕적 문제'냐에 대한 판단은 이미 검찰과 사법부의 시간으로 넘어갔지만, 어느 쪽이든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부르짖는 국민들에게 이미 "참으로 송구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으니 말이다.

매일경제

[좌] 존롤스, 정치철학자이자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저자 [우] 조국, 형법학자이자 現 법무부 장관(Minister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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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로 단연 존 롤스를 꼽는다. 그의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은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수차례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으니 이 글을 읽는 국민들에게 그리 생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를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 충족되는 사회라 정의 내렸는데, 전자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광범위한 체계의 권리와 자유(예컨대 민주적 권리와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 등)가 보장되는 것이라 했다. 이와 같은 '평등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그가 오랜 기간 헌신했음은 상당수의 국민이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후자인데, 롤스의 정의에 따르면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소외된 계층에 이득이 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조국 장관이 지난 수년간 약자의 대변인을 자칭해왔고,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법개혁을 주장했던 그 일련의 행위들이 상당부분 우리 사회 소외계층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에게 심지어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으니 그의 부유한 환경(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누렸을 지도 모르는 특권 등에도 불구하고 그를 우리의 장관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롤스의 '차등의 원칙' 중에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임계점'이란 개념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사회마다 조금씩은 상이할지 몰라도 불평등 정도를 허용하는 임계점이 존재한다. 우리 국민들이 (사회·경제적) 불평등 정도를 '허용할 수 있는 선'이 있고, 그 말인즉슨 조국 장관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그리고 평가하게 될 임계점이 있다는 말이다.

(그건, 그의 가족이건) 하나라도 위법 행위가 증명된다면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될 터이니, 이 경우는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범위 밖의 이야기다. 따라서 위법 행위가 없다는 전제하에 그가 앞으로 해야만 하는 일은 간단(?)하다. 국민이 원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개혁을 통해 '강자 앞에 강하고 약자 앞에 약한 검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들이 더 이상 재벌들의 '환자복 법정 퍼포먼스' 관람하지 않게끔 해줘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해주면, 누가 아는가. 조국 장관에 대한 우리의 분노가 (차등의 원칙에서 말하는) 임계점 아래로 내려갈지.

그가 취임사에서 법무 검찰 개혁을 평생의 소망으로 언급했듯이 권력기관 개혁을 성공리에 마치길 바란다. 그리고 향후 자연인으로 돌아갔을 때, 그가 진보지식인으로서 지금껏 그래 왔듯이 롤스가 말하는 '평등의 원칙'이 우리 사회에 완벽히 실현될 수 있도록 헌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통해, 그가 부족했을 법한 '차등의 원칙' 또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이고, 어찌 보면 롤스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이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부여하는 시대적 소임일지도 모르겠다.

<본 칼럼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

[백승진 유엔 정치경제학자]

현재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불평등의 한국 사회 진단과 해법' 'The Political Economy of Neo-modernisation(신근대화 정치경제론)' '아유레디?: 준비하라 내일이 네 인생의 첫날인 것처럼'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 국제사회의 지속가능발전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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