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돈나' 김완선은 최근 에버랜드와 함께 1990년 히트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뮤직비디오를 29년만에 찍었다. 레트로와 뉴트로 감성을 접목한 이 뮤비는 유튜브에서 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김완선은 "해보지 않은 일을 경험하는 것은 늘 신선하다"며 "밤샘 작업으로 힘들었지만, 뜻깊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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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50)은 대수롭지 않게 용인 시내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다. ‘한국의 마돈나’로 수년 간 여가수 ‘톱’을 찍었던 전성기 이력을 감안하면 좀 낯선 행보로 비쳤다. 누가 알아볼까 나름 ‘조심’하거나 화려한 과거 이력으로 젠체하는 다른 스타들과 달랐다고 할까.
에버랜드가 할로윈 축제 ‘블러드시티3’ 모델로 김완선을 떠올리며 뮤직비디오 제작을 제안했을 때 관계자들 대부분 왠지 모를 선입견으로 ‘거절하면 어떡하지’하며 숨죽였다고 한다. 지난 8일 만난 김완선은 “그렇게 어려운 사람 아닌데”하며 깔깔 웃었다.
“아무래도 좀비 콘셉트니까 제 이미지를 망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얘기를 듣고 ‘이거 너무 재밌겠는데요?’하고 단숨에 달려들었어요. 음악 활동하면서 웬만한 건 다 해봐서 안 해본 것에 호기심이 가는 편이죠. 50세 넘어서 에버랜드 뮤비 제작, 괜찮은 부조화의 조화 아닌가요?”
1990년 발표한 5집 수록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뮤비는 29년 만의 제작이다. 삐에로, 좀비 등과 밤샘 작업을 통해 완성한 뮤비는 유튜브에 공개된 후 개사 버전, 원곡 버전 등을 합쳐 2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뮤비 곡은 원곡의 댄스풍이 지닌 레트로 질감에 색소폰 등 관악기를 새로 넣은 세련된 재즈풍이 섞여 듣는 맛이 풍성하다. 무엇보다 이 곡이 그에게 준 의미와 가치가 작지 않다는 점에서 뮤비 제작에도 선뜻 응했다.
17세 나이에 이모 손에 이끌려 데뷔한 김완선은 전성기를 구가하면서도 이모와의 관계를 '인연'과 '악연'으로 설명했다. 그는 "음악 활동에 전념할 땐 이모 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모가 돌아가신 후 내게 준 음악적 영감과 태도를 돌아보니 그립기만 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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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모든 연예인들이 이 노래를 저처럼 생각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광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연예계에 진출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무대를 책임져야 하는 숙명이 있는 셈이죠. 삐에로라는 분장을 하고 사는 삶의 가면을 지울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제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저를 다독이는 게 가장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방법 같아요.”
‘삐에로’라는 형식적 가면 안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방식도 조금씩 터득하기 시작했다. ‘김완선=댄스’라는 규정된 틀에서도 벗어나 2011년부터 자신의 노래를 만든 것도 타인에게 보여주는 ‘김완선’이 아닌 나를 채우는 ‘김완선’을 찾는 여정이었다.
“김완선하면 댄스나 볼거리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하지만 대중의 관점에서 ‘김완선스럽지 않은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도 많았어요. 이런 제 모습도 봐 달라는 요구이면서 자신에 대한 욕심을 채우는 과정이었던 셈이에요.”
1986년 17세에 1집 ‘오늘밤’으로 데뷔하자마자 그는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도전적인 눈빛과 강렬한 댄스, 당시엔 낯선 댄스 음악은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1990년 기타리스트 손무현이 빚은 5집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 무도회’까지 3곡이 연달아 히트하며 100만장의 판매고까지 달성했다.
무엇보다 ‘원톱’을 찍은 여성 댄스 가수로서는 드물게 그의 조력에는 모두 ‘뮤지션’이 있었다. 유명한 히트 작곡가가 아닌 싱어송라이터들의 손길로 빚은 곡들의 순간순간은 그를 단순한 ‘복사하는 댄스 가수’가 아닌 ‘생각하는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터준 계기였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 박광호, 산울림의 김창훈, 기타 명인 신중현, 싱어송라이터 이장희 등의 참여는 음반 기획에서부터 독립적인 뮤지션의 태도, 곡의 해석력, 사운드 메이킹까지 눈여겨보고 탐구할 ‘학습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
“매니저였던 이모(한백희)는 어릴 땐 훈육과 금전적 관계에서 ‘원망의 대상’이었지만, 2006년 사망하고 나선 더없이 그리운 존재로 기억돼요. 미8군에서 노래했던 이모한테 전 음악을 배운 셈이에요. 이모는 듣고 보는 게 많았고, 그런 음악적 태도로 동시대 작곡가들에게 곡을 잘 안 받았어요. 그래서 늘 뮤지션을 찾아다녔어요. 인기 작곡가들과 작업하면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시키는 대로 불러야 하지만, 이들(뮤지션)은 저보고 ‘네가 생각하는 대로 불러야 한다’고 늘 말씀해주셨거든요. 스스로 음악을 이해하고 그렇게 해석할 기회를 주신 셈이에요. 2011년부터 음반을 제가 직접 제작하고 프로듀싱한 힘의 원천도 이런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김완선은 독립적이었다. 혼자 집에서 책 읽고 피아노치고 노는 게 전부였다. 어느 날 이모를 처음 보고 나서, 그리고 이모 손에 이끌려 ‘희자매’ 공연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이모처럼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누구 말도 안 듣는 고집쟁이였는데, 이모한테는 100% 복종했어요. 한 10년만 이모 잘 들으면 되겠다 싶어 하루도 쉴 날 없이 7년간 이모가 시키는 대로 활동에만 전념했었어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벅찬 일상들, 이모와의 갈등, 자유와 행복에 대한 고민이 뒤섞인 전성기 시절 숨겨진 또 다른 시련들은 지금의 그를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끈 디딤돌이 됐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뮤직비디오를 최근 에버랜드와 제작한 김완선은 "삐에로의 '가면' 넘어 자신에게 중실한 '내면'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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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도 그 인기에 취해있지는 않았어요. 떨어질 걸 알고 되레 ‘뭘 먹고 살지’ 걱정했을 정도니까요. 그게 저만의 철학이었을까요.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수립하는 순간, 욕심이 생긴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일찍 모든 걸 내려놓은 셈이죠. 그렇게 안 살면 안 살아질 것 같았는데, 더 잘 살아진다는 걸 점점 더 느끼고 있어요.”
김완선은 요즘 인디밴드와 ‘위안부 할머니’ 3번째 음반 녹음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직접 지은 곡이 수록되고 이달 말쯤 공개될 예정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이 대목에서 가장 큰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똑같은 과거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살 것 같아요. 결국 자신이 살아온 길을 살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인생이든 정답은 없고, 자신이 사는 인생이 정답일 뿐이에요.”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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