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내 자식은 앞세웠지만 … 한강 다리에 선 젊은이들 붙잡은 목소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인순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

2009년 홀로 키운 외아들 투신 후

한국생명의전화 자살자 유가족 모임 나가

이곳서 상담 교육 받고 전문 상담원 활동

"잘 자란 청춘, 못한다 타박 말고 감싸야"

중앙일보

서울 하월곡동에 있는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박인순 상담원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자살자 유가족 자조 모임에서 큰 힘을 받고 상담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김나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벌써 10년이다.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의 박인순(65) 상담원의 아들이 스스로 삶을 저버린 건 2009년 8월이었다. 당시 스물셋이었다. 박씨는 “우리 아들이 살았으면 꼭 기자분 나이일 텐데… 젊은 사람 보면 더 생각난다”며 운을 뗐다. 9월 10일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만난 박씨는 자기 상처를 딛고 자살 예방에 앞장서는 상담사다. 유가족 출신으로 자살 전문 상담원이 된 이는 그가 처음이다.

박씨는 아들이 9살 때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다. 독하게 일해 홀로 아들을 키우며 밤엔 공부도 했다. 공부를 한 건 상처 난 자기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일이었지만 그동안 아들은 빈집을 지켜야 했다. 중2 때 생긴 아들의 우울증은 고1 때 자살 기도로 이어졌다. 대학 진학 후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우울증약을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극은 찾아오고 말았다.

그 뒤 박씨는 10개월간 밖을 헤맸다. 아들이 몸을 던진 집에 있을 수 없어 공원 등을 종일 돌아다녔다. 그러다 2010년 6월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운영하는 자살자 유가족 자조 모임에 나갔다. 누구에게도 쉽게 공감받을 수 없던 고통을 그곳에서 위로받았다. 박씨는 2011년부터 이곳에서 상담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 상담 봉사자로 활동하다 2015년부터 유급 전문 상담원이 됐다.

박씨는 주 2~3회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마포대교 등 한강 교량에 있는 SOS 생명의 전화와 전국 상담 전화(1588-9191)를 받는다. 주로 20~30대 전화가 많다. 가장 기억에 남은 내담자는 경북의 27살 청년이었다. 대학 학자금 대출을 내 힘겹게 졸업했지만, 취직이 안 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대출 이자로 나가 몇 주째 저녁을 못 먹었다고 했다.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담뱃불을 붙이고 싶다고. “일단은 ‘애썼다, 고생 많았다’ 하며 달랬죠. 상담하면서 경찰에 신고하는데, 그날따라 경찰이 근처까지 갔는데 그를 못 찾았어요. 그래서 제가 ‘분풀이할 겸 큰 소리로 욕을 해보라’고 했죠. 소리로 위치를 찾을 수 있게요.”

중앙일보

한국생명의전화에 있는 박씨의 자리. 주 2~3회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9시까지 SOS 생명의 전화, 전국 상담전화를 받는다. [사진 한국생명의전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씨는 이렇게 4년간 많은 젊은이들의 자살을 막았다. 그는 “자기 자식은 앞세우고 남의 자식 죽음은 말리고 있는 나 자신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종종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죠. 하지만 제 소는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고, 누군가는 종을 쳐야 한다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요." 박씨는 “자살자 대부분이 우울증 환자”라며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암 같은 질병”임을 강조했다.

“1년에 1만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저출산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치열하고 각박한 경쟁에서도 잘 자라준 청춘 한 명 한 명을 감싸야 해요. 당장 성과를 못 냈다고 타박하지 말고 기다려줘야죠. 또 하나, 청춘들이 삶의 의미를 공부나 일의 성과에서 찾지 않았으면 해요. 당신 존재 자체가 부모와 형제에겐 행복이란 걸 꼭 말하고 싶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좀 더 해맑게 살아도 된다고요.”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