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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티셔츠에 운동화… 550조원의 남자, 마지막 출근길은 소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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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 시각)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중국 항저우 본사 앞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의 마지막 출근을 보기 위해 몰려나온 직원들이었다. 멀리서 마 회장이 빨간색 티셔츠에 회색 면바지 차림으로 나타나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직원들은 "마지막 날까지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는 게 마윈답다"고 했다. 중국 인터넷 매체 시나닷컴은 "(마윈이) 자신이 세운 유토피아를 떠나 평범한 '마쌤'(마 선생님)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고 전했다.

조선비즈

"실패? 찔러버려" 마이클 잭슨으로 변신한 마윈 -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겸 회장이 지난 2017년 9월 8일 중국 항저우시에서 열린 알리바바의 18주년 기념파티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마 회장은 10일 회장직을 장융 현 알리바바 CEO(최고경영자)에게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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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자상거래 굴기(崛起)를 이끈 마윈의 시대가 10일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마윈의 55세 생일이자 알리바바 창업 20주년 기념일이며, 중국 스승의 날이기도 한 이날 저녁 항저우에서 열린 창립 20주년 연회(年會)에서 마윈은 회장직을 장융(張勇·47) 현 알리바바 CEO(최고경영자)에게 넘겼다. 1년 전인 작년 9월 10일 전격적으로 예고했던 자신의 퇴임을 정확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다. 알리바바는 "마 회장이 알리바바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회사 경영 전반에서 물러나 본업인 교사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마 회장은 내년 9월까지 1년간 알리바바 주주총회에서 이사직을 유지할 뿐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새로운 꿈을 꾸러 떠난다"

1년 전 그의 퇴임 선언은 중국 안팎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만 55세, 현역에서 물러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더구나 총수가 자진해서 자리를 후계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중국 재계에선 전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홍콩 언론들과 외신에선 "중국 당국이 글로벌 기업으로 덩치가 커진 알리바바 등 자국 IT업계를 견제하기 위해 마윈을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마윈은 퇴임 선언 직후 "외국에선 중국 정부가 우리(알리바바)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는 낭설도 나오는데 그런 일은 전혀 없다"며 "퇴임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고 내가 깊은 생각과 고민을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며 '압력설'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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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은 퇴임 의사를 밝힌 직후부터 그룹 내 5개 계열사에서 맡은 주요 직위를 차례로 장융 CEO에게 물려줬다. 보유 주식도 매각해 지난해 6월까지 7%였던 지분을 최근 6.2%대로 낮췄다.

중국경제망 등 중국 현지 매체들은 마 회장의 새로운 명함에는 '알리바바빈곤퇴출기금대표' '마윈공익기금회장' '농촌교사대변인'과 같은 새로운 타이틀이 12개나 새겨져 있다고 전했다. 마 회장은 지난달 29일 항저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알리바바의 여성 창업자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은퇴하는 게 아니다"라며 "알리바바는 내 꿈 중 하나였을 뿐 나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말했다. 그간 수많은 연설에서 청년들을 향해 "꿈을 크게 꾸라"고 말해왔던 마윈 스스로 직접 꿈을 좇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삼수 끝 대학 간 시골 청년에서 중국 IT 선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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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지난 9일 중국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로 마지막 출근을 하고 있다. 이날 빨간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마 회장은 직원 수천 명과 인사를 나눴다. /웨이보




삼수생, 가난한 농촌 교사, 창업 실패자. 알리바바 창업 전 마윈의 인생을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수재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나 기업 간부이자 지방 관료인 아버지를 둔 마화텅 텐센트 창업자에 비하면 영락없는 흙수저였다. 학창 시절 그는 유독 좋아하고 잘했던 영어를 빼고는 성적이 신통찮았다.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영어 강사로 활동하며 창업에도 관심을 뒀다. 1995년 미국에 갔다가 인터넷을 보고 돌아와 중국 최초의 상업용 인터넷 사이트 '차이나 옐로페이지'를 열었다. 기업들의 연락 정보를 모아둔 사이트였다. 하지만 경험도 돈도 모자랐던 그는 네 차례 실패를 겪고서야 1999년 항저우의 20평짜리 아파트에서 동료 17명과 함께 지금의 알리바바를 세웠다.

20년이 지난 지금 알리바바는 연 매출 3453억위안(약 58조원)의 글로벌 IT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4년 뉴욕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의 현재 시가총액은 4600억달러(약 548조원)로 세계 7위다. "세상에 할 수 없는 비즈니스는 없다"는 마윈의 철학 위에서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와 물류, 핀테크, 클라우드, AI(인공지능) 등 최첨단 기술을 포괄하는 종합 IT 기업이 됐다. 마윈 자신도 지구촌 억만장자 대열에 들었다. 미 포브스 기준 마윈의 재산은 370억3000만달러(약 44조원)로 중국에선 마화텅 회장의 380억8000만달러에 이어 2위이자 전 세계 21위다. 알리바바의 성공에 대해 마윈은 "똑똑한 사람들은 그들을 이끌어 줄 바보가 필요하다"며 겸손함을 보인다.

마윈 없는 알리바바, 리스크도

알리바바의 성장에 절대적이었던 마윈의 퇴임은 알리바바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그의 퇴임으로 알리바바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잃었다"고 했고, 로이터는 "마윈이 없는 알리바바의 미래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전했다. 알리바바는 여전히 매출이 견고하게 성장 중이지만, 핵심 사업인 전자상거래 비중이 영업이익의 87%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알리페이·클라우드 등 새롭게 개척하고 있는 분야의 사업은 대부분 적자다. 구글·페이스북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알리바바의 6억여 고객 대부분은 중국인이다. 최근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중국 내수가 주춤하면서 해외 시장 확장이 시급한 처지다. 장융 차기 알리바바 회장은 중국 상업주간과 인터뷰에서 "마윈의 목표 중 하나가 알리바바 영업이익의 절반을 해외에서 창출하는 것이었다"며 "이를 실현시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로라 기자(auro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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