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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58] 진화는 진실을 선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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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무더위가 서서히 사라지고 오랜만에 아침저녁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는 9월. 복잡하고 골치 아픈 세상을 잠깐 멀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본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푸른 나무들. 하지만 잠깐! '진짜' 하늘과 나무는 당연히 파랗지도, 푸르지도 않다. 색채는 빛의 특정 파장에 반응하는 망막 세포와 뇌의 정보 처리 과정이 만들어낸 주관적 '해석'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는 다른 감각 기능을 가진 동물들에게 보이는 세상은 우리와는 다를까? 물론이다. 초음파로 인식된 박쥐의 현실을 우리가 상상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현실은 분명히 하나뿐일 텐데, 생명체마다 다르게 보는 세상. 그렇다면 '진짜'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스스로의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 없듯, 인간으로 진화한 우리가 다른 존재의 세상을 상상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해석하는 기능을 가진 뇌는 진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진짜 세상과 근사하지 않을까? 진화의 핵심인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선 진실을 파악하도록 뇌는 최적화되지 않았을까?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 도널드 호프먼 교수는 최근 진화는 어쩌면 진실이 아닌 생존에 도움이 되는 현실 왜곡 위주로 뇌를 최적화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뇌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진실을 무시하고 희생하도록 설계되었기에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상은 진짜 세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이 칼럼 문서의 아이콘과 메모리 반도체 회로에 입력된 0과 1의 생김새가 다른 것 같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 역시 해볼 수 있겠다. 생존과 존속이 핵심인 진화의 결과물이 대부분 왜곡과 거짓이라면, 존속과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의 결과물 역시 대부분 거짓과 현실 왜곡일지도 모르겠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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