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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4] 당신의 코, 도대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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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규나 소설가


“제가 거짓말한 걸 어떻게 아셨어요?” 피노키오가 물었습니다. “‘얘야. 거짓말은 쉽게 표가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과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 네 경우는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구나.” 푸른 머리 요정이 대답했습니다. 피노키오는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지요. 문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코가 너무 길어졌거든요.

ㅡ카를로 콜로디 '피노키오의 모험' 중에서.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는 말도 안 듣고 학교에도 가지 않고 교과서를 팔아 극장에 놀러 가는 말썽꾸러기였다. 한번 어긋난 길로 가면 되돌아 나오기 어려운 법. 피노키오는 돈을 벌어 집으로 가려 하지만 악당들의 꾐에 빠져 돈도 빼앗기고 목숨도 잃는다.

조선일보

말 안 듣는 아이는 무서운 벌을 받는다는 교훈을 담은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이탈리아 어린이신문에 연재될 당시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맺은 결말이다. 그러나 피노키오를 살려달라는 독자들의 소망을 외면하지 못한 작가는 요정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시 살아난 피노키오는 멋진 모험을 계속하며 할아버지와 재회하고 마침내 진짜 사람이 된다. 이것이 1883년에 출간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이다.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은 금방 탄로 나는 거짓,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커지는 거짓이다. 사실 피노키오는 상습적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건 딱 한 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피노키오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귀뚜라미 친구 지미니의 역할을 확대시켜 재미를 더했다.

어른들이 거짓말을 잘하는 이유는 옳고 그름을 말해주는 양심의 목소리, 귀뚜라미 지미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코가 길어진 것도 모르고 “나처럼 진실하게 살아야 해”라고 으스대며 거짓말을 쌓아간다. 수없이 ‘모른다’ ‘아니다’ 말하고 장관에 임명된 사람의 코는 얼마나 길어졌을까. 한번 죽었지만 요정 덕에 살아나 진실한 인생과 사랑을 배우고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피노키오처럼, 그런 기회와 행운이 그에게도 주어질까.

[김규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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