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시위는 내년 1월 치러지는 대만의 총통선거도 흔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친중파인 국민당의 한궈위 후보, 독립 성향인 집권 민진당의 차이잉원 현 총통, 무소속 출마설이 도는 궈타이밍 전 훙하이정밀공업 회장.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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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인 국제부 차장 |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의 주역이자 최근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 시위를 이끌어온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23)이 3일 대만을 찾았다. 지난달 30일 경찰에 구금됐다가 조건부로 석방된 직후였다.
웡은 대만 방문 첫날 탈(脫)중국 노선을 드러내는 대만의 현 집권당 민주진보당(민진당) 정치인들을 만나 “우리(홍콩과 대만)는 운명을 같이하는 한 가족”이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특히 “5년 전 우산시위가 벌어졌을 때 일부는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Today‘s Hong Kong is tomorrow’s Taiwan)’이라고 했다. 이제 나는 ‘오늘의 대만이 내일의 홍콩’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웡이 말한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이라는 말은 5년 전 대만 대학생들의 구호였다. 친중 성향 마잉주(馬英九) 총통 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서비스무역협정을 입법원(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고자 24일간 농성한 ‘해바라기 학생운동’의 상징이었다. 중국 경제에 종속되는 것에 대한 대만인들의 두려움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
내년 1월 총통선거를 앞둔 대만에서 다시 이 구호가 회자되고 있다. 대만 일간 롄허(聯合)보 등에 따르면 8일 친중 성향의 중국국민당(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는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행보에 불만을 나타낸 것.
대만의 불안이 가중되는 배경에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 1월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 4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대만과 일국양제식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며 무력 사용 가능성도 내비쳤다. 4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대만인 대다수는 중국과의 통일이나 일국양제를 원치 않는다. 올 3월 대만 국립 정치대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9%가 일국양제를 반대했다. 찬성은 10.4%에 그쳤다.
최근 홍콩 시위는 일국양제에 대한 우려에 불을 붙였다. 중국은 일국양제의 성공 케이스로 홍콩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홍콩 시위에서 불거진 ‘차이나 포비아’는 120여 일을 앞둔 대만 총통선거의 판도를 바닥부터 뒤흔들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낮은 인기로 정권교체가 확실시됐던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의 지지율이 급등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3일 대만 핑궈(빈果)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진당 소속 차이 총통은 현재 국민당의 한 후보는 물론 출마설이 도는 궈타이밍(郭台銘) 전 훙하이정밀공업 회장과 중도층의 지지를 받는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의 연합 구도에서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차이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당시에는 중국과 거리 두기로 대만 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등 실용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런 평가가 오히려 그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다른 후보들 역시 이런 기류 속에서 중국과 거리 두기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궈 회장은 “홍콩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정도다.
중국도 대만의 불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반중 시위가 격화되더라도 대만 선거가 열리는 내년 1월까지는 중국이 군사적 개입을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국방부가 홍콩 시위에 중국군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인 지난달 초 ‘홍콩이 유혈 사태를 피한다면 대만 덕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내년 정권교체를 원하며, 홍콩의 사건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중국은 대만 경제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차이 총통의 부상을 저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7월 말 대만 개인여행 일시 중지 조치를 내린 것은 대표적인 사례. 내년 1월까지 이어지면 대만의 경제적 손실이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과연 내년 선거까지 차이 총통의 반중 노선은 효과가 있을까. ‘오늘의 대만이 내일의 홍콩’이 될지,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지의 기로에서 대만은 홍콩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홍콩 시위가 영원하진 않겠지만 중국 지도자들의 기억에는 오래 남을 것이다. 대만 유권자들은 홍콩을 일국양제의 잘못된 사례로 볼 것 같다. 중국의 일국양제는 이렇게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구가인 국제부 차장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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