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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위기의 헌책방]④ 반나절 헌책팔아 8천원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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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헌책장터 '한평책방' 체험기

5시간 동안 4권 팔아…좁은 자리 지키기 '곤혹'

이데일리

‘서울책보고’에서 매달 마지막 주에 진행하는 시민 헌책장터 ‘한평책방’에 참여해봤다. 이윤정 기자(오른쪽)가 1시간여 만에 찾아온 손님에게 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윤정 기자).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일요일 오전 11시. 전날 챙겨 둔 30여권의 책과 우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서울책보고’에서 열리는 ‘한평책방’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택시를 타기 위해 잠깐 이동하는 동안에도 양 손에 든 15권의 무게가 꽤나 무거워 진땀이 났다.

‘서울책보고’는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1465㎡ 규모(지상 1층)로 조성된 초대형 공공 헌책방이다. 쾌적하고 깨끗한 최신시설에 동아서점·동신서림 등 25개의 헌책방의 책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1970년대 청계천 책방 거리를 모티브로 장르별 분류없이 헌책을 빼곡히 꽂아놓은 것이 특징. 각 책장에는 헌책방 이름이 붙어있다. 개장 일주일 만에 1만여 명이 찾은 것은 물론 지금도 주말이면 1000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주말에 ‘한 평 시민 책시장’이 열리고 있다. 시민이 직접 가지고 나온 헌책을 판매하는 ‘한평책방’과 책 속의 명언 엽서 만들기, 독서통장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집 책장에 잠자고 있는 헌책도 처분하고, 헌책방 주인들의 마음도 십분 느껴보기 위해 직접 7월 ‘한평책방’ 행사에 참여해봤다. 참여자들은 미리 신청기간에 토·일요일 하루 중 참여할 날짜를 고를 수 있다. 이틀 다 참여해도 된다.

◇1시간여 만에 첫 손님

‘한평책방’은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열린다. 행사 시작 전에 ‘서울책보고’에 도착하니 참가자들을 위한 책 매대가 마련돼 있었다. 따로 안내판 등이 붙어있지 않아서 직접 책을 전시하고 꾸며야 한다.

이날 서울도서관에서 마련한 매대는 총 10개. 12시가 다가오자 이 중 8개의 매대가 참여자들의 헌책으로 채워졌다. 중앙테이블에는 ‘엽서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었고, 바로 뒤에 마련된 독서공간에는 책을 보는 아이와 부모 등 20여명 정도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판매와 관리를 대행하는 비엠컴퍼니 관계자는 “평소에는 신청이 빨리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이번에는 휴가철에다 비까지 와서 신청을 취소한 경우도 있었다”며 “보통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오후 2시부터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오후 1시가 넘어서까지 기자는 한 권의 책도 팔지 못했다. 초조한 마음에 옆 매대에서 A4 용지와 네임펜을 빌려 ‘소설·에세이 1000원~4000원’이라고 적어놓았다. 정해진 가격은 없지만 평균적으로 이 가격대에 많이들 판다고 했다.

오후 1시 20분. 드디어 첫 손님이 기자의 매대를 방문했다. 몇 권을 들춰보던 손님은 책 ‘영리’를 집어올리며 얼마에 파는지 물어봤다. “첫 손님이니 1000원만 주세요”라고 말하자 손님의 지갑이 열렸다. 내친김에 옆에 있는 에세이 책도 한권 사가겠다고 했다. 개장 1시간여 만에 기자의 손에 3000원이 주어졌다. 비록 잔돈으로 바꿔 온 1000원 짜리 10장보다 수입이 적었지만, 설레고 기뻤다.

◇“어린이책이 많이 나가요”

하지만 다음 손님이 오기까지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좁은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좀이 쑤셨다. 괜히 다른 매대를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가져온 책을 잠시 읽어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시간이 가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판매를 하던 주부 박모씨(45·잠실동)는 “어제도 참여했는데 12권을 팔아 9000원을 벌었다”며 “초등학생 자녀도 교육을 위해 함께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실제 박모씨의 매대 옆에는 초등학생 자녀들이 직접 팔고 있는 매대가 있었다. ‘1권당 500원’이라고 쓴 앙증맞은 글씨가 눈에 띄었다.

주로 어린이 도서를 판매하는 심영화(36·성내동) 씨의 매대는 인기가 많았다. 방문객 이벤트로 ‘페이스페인팅’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심 씨는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아서인지 어린이 관련 책이 많이 나간다”며 “한분이 3권을 사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기자의 옆에서 판매를 했던 허모씨(35·프리랜서)는 ‘타로’ 이벤트로 방문객을 끌었다. 헌책 한권을 구입하면 공짜로 ‘타로점’을 봐주는 식이었다. 허 씨는 “다른 곳에서는 밑줄이 쳐져있는 헌책은 못 파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책도 사간다”며 “그냥 책만 파는 것보다 이벤트를 같이 하면 방문객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는 총 4권을 팔아 8000원의 수익을 얻었다. 비오는 날 택시타고 이동한 값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게 없는 장사였다. 잘 팔리는 ‘어린이 책’은 한권도 없이 소설, 에세이, 경제·경영서 등만 챙겨온 게 패착이었다. 무엇보다 5시간 동안 작은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웠다.

비엠컴퍼니 관계자는 “‘한평책방’ 행사 초기에는 책만 팔던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점점 판매자들끼리 경쟁을 하면서 간판도 예뻐지고 이벤트도 많아지는 등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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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책방’에 참여한 기자의 매대(사진=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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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한평책방’ 행사 모습(사진=서울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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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한평책방’ 행사 모습(사진=서울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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