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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설치미술가 양혜규, 주술적 면모 보인 ‘서기 2000년이 오면’전…‘서기 2000년’, 감각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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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해경의 1982년 발표곡

‘서기 2000년’ 흐르는 전시장

작품들, 청각·후각까지 자극

경향신문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양혜규 작가가 작품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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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양혜규(48·독일 슈테델슐레 교수)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다. 저명한 국제전, 미술관에 초대받는다. 유명 평론가들이 비평하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주요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94년 독일로 건너간 후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양혜규 작가가 작품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을 국제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이후 4년 만의 국내전이다.

전시회는 블라인드 구조물에 바퀴를 달아 운동성을 부여한 ‘솔 르윗 동차(動車)’, 둥그런 구의 표면을 작은 방울로 뒤덮어 천장에서 늘어뜨린 조각 ‘소리 나는 운동 지도’가 중심이다. 미니멀리즘·개념미술에 영향을 끼친 솔 르윗을 오마주한 ‘솔 르윗 동차’는 작가가 개방·폐쇄 성격을 함께 지닌 블라인드에 주목, 적극 활용하는 블라인드 연작이다. 방울 연작인 ‘소리 나는 운동 지도’는 무늬 변화와 방울 소리의 시청각이 공존한다.

전시장은 과거와 현재·미래가 뒤섞인 시간 속에 무뎌진 감각을 벼리는 공간이 됐다. 입구엔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1982년)이 흘러나온다. 벽에는 고대부터 현대 첨단산업 관련 사물들을 담은 벽지 작업이, 바닥에는 장기판 작업 위에 향기를 뿜어내는 짐볼들이 놓였다. 천장에서는 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회담’ 중계영상에서 추출한 새소리가 울린다. 연대기 편집 작품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도 있다. 최근 해외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많다.

작가는 시대·지역을 넘어 연관없어 보이는 사물·인물·사건 등을 조합·대립·중첩시키는 “이형조합”을 즐긴다. 그 이형조합은 충돌이나 조화, 혼돈의 미묘한 파장을 낳아 독특한 경험을 안긴다. 스스로를 디아스포라적 ‘홈리스’로 자처하는 작가의 작품에선 시공을 넘나들며 영혼과 감각을 일깨우는 주술사적 면모도 엿보인다. 풍성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는 듯한 전시장에서 양 작가를 만났다.

경향신문

‘소리 나는 운동 지도’(2019) 니켈 도금된 방울 등, 122×70×70㎝. 사진 양혜규스튜디오.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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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청각·촉각은 물론 후각까지 감각들을 자극한다. 뜻이 있나.

“이젠 의도하지 않더라도 스멀스멀 자연스레 작품에 녹아든다. 드러내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감각에 휘둘려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감각을 제 작품의 프로파간다로 쓸 생각도 전혀 없다. 작가로서 저는 화두가 든 주머니를 아주 깊숙하게 만들고 싶다. ‘깊은 포켓’이라 표현하는데, 포켓에 무얼 넣겠다, 안 넣겠다 차원을 넘어 얼마나 포켓을 깊이 만드는가에 관심이 있다.”

- 작품들에 주술적·신비주의적 상징이 강한 요소들이 많다. 이전의 소중한 것들을 배제시킨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인가.

“근대와 자본주의가 배제시킨 것들에 대한 성찰도 있지만 비판·성찰보다 회복·정상화가 더 적합한 것 같다. 비주류는 주류에 비해 토착적·신비적인 면이 강할 수밖에 없다. 저는 이런 요소들을 주술 측면이 아니라 주류·비주류의 존재방식으로 보고자 한다. 흩어지고 분열된 것들을 조합시켜 파생되는 것을 노린다.”

- 많은 공부로 작품에 풍부한 서사를 녹여낸다. 작품이 어렵다는 평도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새로 발견하고… 공부는 재미와 어마어마한 즐거움이 있다. ‘작품을 일부러 어렵게 만드냐’고도 하는데, 그렇진 않다. 다만 예술, 창작을 쉽게 풀어내는 것엔 비판적이다.”

양 작가의 공부는 작가가 말한 ‘깊숙한 포켓’과 연결된다. 2013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과 오베트1928에서의 개인전 당시 만난 미술관 관계자는 “양 작가 작품은 작품마다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얕거나 뻔하지 않은 ‘깊숙한 포켓’으로 풍부한 서사가 나올 수 있다.

- 소피 토이버 아르프, 구르지예프, 페트라 켈리, 윤이상 등 작업에 많은 인물을 소환하는데, 선택기준이나 공통점은.

“하하. 나도 어떤 공통점이 있나 찾아보지만 아직 못 찾았다. 기준도 없다. 뒤라스와 윤이상 작업을 이번에 내놓았지만, 내 컴퓨터에는 에드워드 사이드, 장 주네 등이 포함된 7명을 중심으로 하던 작업이 있다. 굳이 묶어보자면, 현 시스템을 뛰어넘는 디아스포라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아 작업도 했다. 디아스포라에는 지역·공간 기반의 칸막이식·통념적 의미를 넘어 무한 확장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 이 시대 예술가의 역할은.

“가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저는 아직 길을 찾는 중이다. 때론 이것밖에 할 수없나 하고 회의가 들기도 한다. 다음 기회에 답을 해보겠다.”

이번 전시회 부대행사로는 윤이상의 ‘Image-영상’ 연주, 비평가 이진실·김성원의 강연, 드론 축구비행이 마련됐다. 11월17일까지. (02)735-8449.

도재기 선임기자 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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