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아뇨, 문학은 그런 것입니다’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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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는 어떤 새로운 문학적 이념이나 논리를 표방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대신 현존하는 여러 갈래의 문학적 입장들 사이의 소통을 촉진하고, 특정한 이념에 구애됨이 없이 문학의 다양성이 충분히 존중되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1994년 겨울호로 창간된 문학 계간지 <문학동네>의 창간사 한 대목이다. 그 전까지의 문예지가 선행 잡지들과 구분되는 독자적 문학관을 표나게 내세우며 출발했던 것을 생각하면, <문학동네>의 창간사는 소박하고 겸손하게 들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소박과 겸손은 더 큰 ‘포부’와 ‘야망’을 감추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한 이념과 논리에 갇힌 좁은 문학이 아니라 모든 유파에 열리고 온갖 경향을 포용하는 ‘최대한’의 문학을 이 잡지는 추구했던 것. 창간 이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문학동네>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문학 잡지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잡지 <문학동네>를 기반으로 하는 출판사 문학동네 역시 유력한 문학 전문 출판사로 자리잡았다.
그 <문학동네>가 가을호로 통권 100호를 맞았다. 계간지란 계절별로 1년에 네 번 내는 잡지이니, <문학동네>의 역사가 어느덧 사반세기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문학동네>는 ‘문학동네 비평담론, 회고와 전망’ 등의 특집과, 문인 100명의 글을 모은 별책 부록 <아뇨, 문학은 그런 것입니다>로 통권 100호를 자축했다.
<문학동네>가 1990년대 중반에 창간되었고 80년대 문학의 정치·이념 지향에서 벗어나 ‘문학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 잡지는 흔히 90년대 문학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잡지 주간인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통권 100호 권두언의 제목을 ‘90년대 문학은 없다’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자기비판 능력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자기비판 능력에 의해 끊임없이 몸을 바꾸는 문학의 저 살아 있는 혼돈을 끈질기게 마주하고 그것으로부터 삶과 역사의 진실을 발견해내고 그것에 동참하고 때로는 그것을 가속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동네>가 지향하는 ‘문학’ 앞에 굳이 90년대라는 한정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다. 이 잡지의 초대 편집위원인 평론가 서영채 역시 특집에 기고한 글에서 ‘형용사-문학’ ‘액체 문학’이라는 용어로 <문학동네>가 추구한 유동적이며 열린 문학 이념을 설명한다.
<아뇨, 문학은 그런 것입니다>에는 편집진이 던진 공통의 질문에 답한 문인 100명의 짧은 산문이 묶였다. ‘문학은 나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일 것인가?’가 그 질문이고, 원로 황동규·마종기에서부터 지난해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지연·박세랑까지가 포함되었다. 황동규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것이 1958년이었으니, 등단 연도로 치면 60년의 연차를 아우른 것이다. 책 제목은 황정은의 글에서 가져왔다.
황동규 시인은 자신이 주력해 온 ‘극서정시’ 양식에 관해 설명하며 미발표 신작을 소개했다. ‘한밤중에 깨어’라는 제목의 이 시 앞부분은 평생 시인이자 교수로 생활해 온 삶이 그의 무의식에 남긴 긴장을 엿보게 한다. “출석부 고쳐 들고 강의실 문을 여니/ 다른 교수가 강의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문 닫고 보니 내 강의실은 다른 건물./ 밖에 나와 아무리 찾아봐도 그 건물이 없다./ 꿈이 끊긴다.” 임철우는 “(광주 5·18의)열흘의 시간이 내게 준엄하게 명령했다. 너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소설을 쓰겠노라고 그 명령 앞에서 대답했다”고 썼고, 박상영은 “‘나의 얘기를, 우리의 얘기를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 지금의 내 삶이 충분히 감사할 만한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문학동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편집위원직에서 물러나고 평론가 강지희와 김건형, 인아영이 새로 편집위원으로 합류한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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