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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저물가 비상등에…정부 “공급 변동 탓” KDI “수요 위축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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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물가상승률’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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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에 선 긋는 정부

농산물·석유류 가격 하락

기저효과 등 일시적 강조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수준을 기록하자 디플레이션(상품·서비스 가격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의 저물가 현상이 농산물·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 측면의 일시적인 변동 때문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에서는 소비·투자 등 시장의 ‘수요’ 위축으로 저물가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수요 위축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를 진작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8일 발표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0.0%를 기록한 데 대해 “수요 위축에 공급 측 기저효과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 0.038%였으나 소수점 한 자릿수까지 공표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0.0%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물가상승률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수요 위축에 있다는 KDI의 분석은 정부의 관점과 다소 다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지난 3일 거시정책협의회에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하며 “이번 저물가 상황은 수요 측 요인보다는 공급 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산물(-11.4%)과 석유류(-6.6%) 등 공급 측면 가격 하락에 따라 일시적인 변동폭이 컸고, 지난해 같은 달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기저효과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고착화’ 경고 나선 KDI

소비·투자 부진 악순환

장기 경기침체 선제 대응

수요 진작 적극 재정 주문


하지만 김성태 KDI 경제전망실장은 “물가상승률이 지난 7월 0.6%에서 지난달 0.0%로 떨어진 것만 놓고 보면 공급 측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근본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인 2%를 하회하며 저물가가 지속되는 원인은 수요 위축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 물가상승률이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하는 등 저물가 현상을 일시적인 원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수요 위축 등에 따른 저물가 현상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물가가 낮으면 소비자는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로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상품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투자에 소극적이게 된다. 이에 따라 경기활력이 떨어지며 또다시 수요 위축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접어들 수 있다.

실제 수요가 위축된 모습은 실물지표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소매판매(소비)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가 감소한 것은 지난 2월(-1.9%) 이후 5개월 만이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92.5)는 7월보다 3.4포인트 하락해 4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해당 지수가 100보다 낮다는 것은 소비자의 심리가 비관적임을 뜻한다.

설비투자도 지난 7월 마이너스 4.7%를 기록해 지난해 11월부터 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KDI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며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라고 총평했다. KDI의 ‘경기부진’ 진단은 6개월째다.

소비·투자 등 민간의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민간주체들의 심리냉각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정책은 경기진작에 최우선 목표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지금 시점에서 확장적 재정지출은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일시적으로는 적자폭을 늘리며 재정지출을 확대해 물가 하방압력에 대응할 수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민간 수요를 감소시키는 저출산·고령화 등에 대응하는 데 재정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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