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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세계체계 분석의 한 시대가 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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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은 보편과 특수라는 근대 세계 이해의 이분대립을 허구로 봐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새로운 접근은 이분 구도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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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계 분석으로 사회과학계를 크게 뒤흔든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2019) 교수가 사망함으로써 세계체계 분석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세계체제가 아니라 세계체계가 정확한 표현이다). 세계체계 분석의 ‘사인방’이라 지칭되던 네 대가 중 프랑크, 아리기, 아민이 먼저 세상을 뜬 후 월러스틴까지 사망함으로써 반세기에 걸친 세계체계 분석의 시대는 그 주요 인물들과 함께 역사 속으로 들어섰고, 세계체계 분석이 남긴 유산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는 후학의 과제로 남겨졌다.

1974년 <근대세계체계> 제1권을 세상에 선보임으로써 세계체계 분석의 도발적 질문을 학계에 던진 이후 월러스틴은 지속적으로 유럽 중심적 사회과학의 경직된 시야를 돌파해 인식의 경계를 확장했다. 동시에 그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과학의 기여를 되새겨 보는 노력을 진행해 왔다.

월러스틴의 지적 노력의 방향은 그의 책 제목 중 하나인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으로 잘 집약된다. 한편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세계가 더는 익숙한 방식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근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쌓아온 사회과학의 지식세계 또한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 문제가 된다.

월러스틴의 지적 여정은 이 이중의 위기를 이해하고 넘어서려는 오랜 고민의 과정이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근대’란 앞선 것을 뒤처진 것의 미래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세계를 점점 더 동질화하고 표준화한다. 그리고 앞선 것과의 격차와 이를 따라잡는 속도를 보편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이 학문의 사명처럼 제시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세계는 이렇게 동질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고 다양한 특이성들로 분절되며, 법칙화할 수 없는 특수성을 규명하는 것이 오히려 학문의 사명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월러스틴은 보편과 특수라는 근대 세계 이해의 이 이분대립이야말로 허구적이며,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새로운 접근은 이 허구적 이분 구도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이 허구적 대립은 개별 국가를 분석단위로 삼아 역사 변동을 설명해보려는 시도 때문에 발생한다. 월러스틴은 개별 국가를 분석단위로 삼는 것은 잘못된 출발점이며, 사회과학에서 유일한 분석단위는 역사적 체계이기에 이에 맞추어 시공간의 개념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근대’를 이해하려면 세계적 차원에서 우리가 사는 역사적 체계인 근대세계체계가 수립된 시점까지 분석의 시간을 길게 확장해야 한다. 동시에 그 변동이 전개되는 세계적 차원에 맞추어 분석의 공간 또한 전 지구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이런 분석 과제는 만만치 않다. 장기지속이라는 이름으로 길게 확장된 시간대는 그보다는 짧지만, 그럼에도 제법 긴 중기적 시간 순환의 반복적 전개들(세계헤게모니의 교체)과 중첩되며 이 동역학을 통해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에 맞물려 전 지구적 공간의 구조는 계속해서 재편되고, 그 중심지역 또한 계속 변동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기서 월러스틴은 매우 중요한 논점을 제기한다. 근대에서 이 시공간의 전 지구적 확대와 변동은 한편에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형성이라는 강한 통일화-표준화를 추진한다. 하지만 이는 다수의 국가로 이루어진 국가 간 체계의 질서에 기반해 진행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헤게모니가 되기 위한 열강들 사이의 경합의 반복된 시도와 더불어 세계 경제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분할하는 불평등한 구조가 동시에 형성됨을 알게 된다. 여기서 보편주의적 통합성과 동시에 특수주의적 차이화가 이 근대세계체계의 고유한 속성임이 밝혀진다.

월러스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변동을 우리 ‘지식 세계’와 연결짓는 지구문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프랑스혁명이라는 ‘세계혁명’을 계기로 자유주의를 우위로 한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삼분구도가 형성되어 세계체계를 지탱해 오다가, 1968년의 또 다른 ‘세계혁명’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그 이후 우리는 체계 자체의 위기와 세계체계에 대한 지식세계의 위기뿐 아니라 사회운동의 위기까지 동시에 겪고 있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분석에 대해서는 유통주의라는 비판, 종속이론의 한 분파라는 비판, 구체적 사례와 계급 분석을 경시한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월러스틴은 그 비판이 자신의 저작을 숙독하고 제기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오히려 건설적 논쟁은 세계체계 분석의 ‘사인방’ 사이의 내부적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에서 중요한 쟁점은 세계체계의 장기지속과 중첩되는 중기적 시간대의 순환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특성을 지니며, 이 순환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어떻게 상이한 특징을 지니는 구조를 형성하는가였다. 또한 근대자본주의 세계체계 이전의 세계는 어떤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근대세계체계의 위기 이후 도래할 세계의 질서는 어떤 것이 될지를 둘러싼 논란이 또 하나의 미완의 쟁점이다.

월러스틴의 대저작인 <근대세계체계>는 37년에 걸쳐 모두 네 권으로 출판되었는데 처음 예상보다 작업이 확장되어 2011년 제4권을 발행하면서 월러스틴은 이후 제5권 발간을 예고했고 “내가 오래 살 수 있다면 제6권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으로 이 기획은 미완인 채 중단되었다.

한겨레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한 윌러스틴은 유럽 지배층의 관점이 아니라 비유럽 전체 세계와 피억압자들 모두를 포함한 진정한 전 지구적 시각에서 보자면 지난 500년 근대 세계의 역사는 결코 ‘진보’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월러스틴이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글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집단적 노력에 따라 미래에 더 좋은 세계가 도래할 가능성도 절반이지만 세계가 더 나빠질 가능성도 절반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집단적 노력에 월러스틴의 유산과 교훈이 어떻게 쓰일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백승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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