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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120]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다. 그 행위 내용만 봐가지고는 가벼워 보이지만 이 범죄도 엄연히 성폭력범죄 가운데 하나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죄명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이라고 적는다.
흔히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누구라도 범할 수 있는 범죄라서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나 길거리나 계단과 같은 공공장소 등 범행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언제라도 범할 수 있는 범죄인 데다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저장할 수 있는 탓에 쉽게 전파가 가능하다. 가해자 본인 또는 제3자에게 단순한 호기심의 발동을 넘어 성적 욕구를 발생 내지 증가시키거나 피해자에게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넘어 인격적 존재로서의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범죄이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이 언제라도 공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 주는 범죄이기도 하다.
동의를 받지 않고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 부위를 촬영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 혹은 사진 파일이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 마치 음주운전에서 음주측정기로 측정한 음주수치가 확보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범인이 촬영에 이용한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이 확보해 저장된 사진을 확보하거나 삭제가 의심스럽다면 소위 디지털포렌식 과정을 거쳐 삭제된 사진을 복원해 그것을 증거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해자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할 수 있고 법이 정한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이 적법절차 원칙을 선언하고 형사소송법이 영장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까닭이다. 법이 따르라고 정한 절차에 어긋나거나 영장주의에 위반하여 수집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법정에 제출될 수도 없고 설령 제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하여 유죄판결을 내릴 수도 없다.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가 명확히 이를 규정하고 있다.
여자 친구와 지하철로 이동 중이던 B는 아까부터 여자 친구 뒤에 서 있는 A가 의심스러웠다. 휴대전화를 들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뭔가 이상했다. 순간적으로 여자 친구의 치마 속으로 휴대전화가 향하는 것을 보았다. 남자 친구 B는 다음 역에서 정차하자마자 A를 붙잡아 지하철에서 내리게 했다. A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그 여성을 촬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B는 믿기지가 않는다.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아 사진을 찾아봤는데 정말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은 없다. 그사이에 삭제했구나 싶었던 B는 A의 휴대전화를 계속해서 들고 가까운 경찰서로 찾아간다. 지하철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촬영했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며 범죄 신고를 한다. 경찰관이 피해여성의 남자친구 B로부터 휴대전화를 받아서 사진 폴더를 살펴보니 신고한 범죄에 해당하는 사진이 없다. 그런데 웬걸 다른 여성들의 사진들이 몇 장 보이는 게 아닌가? 담당 경찰은 A에게 이런 사진도 나오는 것 보니 B의 여자 친구 사진도 몰래 촬영한 것 아니냐며 A를 추궁한다. A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억울해한다. 그러나 그러면 휴대전화를 임의제출하는 것으로 하여 디지털포렌식을 해보자는 담당 경찰의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삭제된 사진을 모두 복원한 결과가 나왔다. B의 여자 친구 사진은 정말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무릎, 엉덩이, 종아리가 강조되어 촬영된 다수의 사진이 복원되어 나왔다. A가 카메라이용촬영죄를 범한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재판에서도 B의 여자 친구 말고 다른 여성들의 수치스러운 부위를 촬영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될까?
A가 촬영한 사진은 A의 휴대전화에서 나왔고 그 휴대전화는 압수영장을 받아 확보된 것이 아니다. B가 강제로 A에게 빼앗아 그대로 경찰에 인계된 것이 서류로만 임의제출에 의한 압수로 처리되었을 뿐이다. 임의제출에 의한 압수는 영장주의의 예외로서 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필요 없고 사후영장을 발부받을 필요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A의 의사에 따른 제출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 제출 경위를 보면 본인이 제출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제출한 것이라 보기도 어려워 보인다.
임의제출 말고 현행범체포에 따라 영장 없이 압수된 것이라고 볼 여지는 없을까? 현행범체포를 하는 경우에는 영장 없이도 그가 소지하고 있는 물건을 압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범체포는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현행범체포에 따른 무영장 압수는 수사기관만이 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으니 이것도 어려울 것 같다. B가 카메라이용촬영죄의 현행범으로 A를 체포할 수는 있지만 A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아 압수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을 담당 경찰이 그대로 인계받은 것이므로 현행범체포에 따른 무영장 압수라고 보기 어렵다.
성적 수치감을 유발할 만한 사진을 촬영한 사람에게 법이 정한 형벌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은 정의의 요구이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 가능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또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정의의 측면이다. 실체적 정의가 중요한 만큼 절차적 정의도 중요하다. 다수의 여성 피해자들을 생각하여 A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 걸까? 아니면 A를 처벌하는 데 필요한 증거는 영장주의라고 하는 형사소송법상의 중요한 절차 규정을 위반한 것이므로 이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옳은 걸까? 법원에서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수사기관이 법에 따라 수사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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