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료 "한국 정부의 결정, 美 안보·국익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
한일갈등서 한국편 들던 소수도 사라져 "워싱턴 기류 완전 변화"
靑 "한미동맹 무관" 주장에 "동북아 안보이슈 이해 못하는 사람"
"한국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 이후 워싱턴이 다 한국에 등을 돌렸다."
트럼프 정부의 한 관계자는 27일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는 한·일 갈등에 대한 워싱턴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한국이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을 일본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과 관련, 워싱턴 분위기는 한국 책임론으로 상당 부분 기운 상황에서도 한국을 동정하고 편들어주던 사람들이 소수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해버리는 것을 보고는 그들마저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젠 국무부·국방부·의회, 전문가 그룹이 모두 한국을 비판적으로 본다. 이 관계자는 "지소미아 파기는 미국 안보, 미국 국익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제 워싱턴은 한·일 갈등을 동맹국 간 갈등이 아니라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우리 문제'로 다룬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워싱턴의 태도는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다. 한·일 간 역사 문제의 복잡함을 고려해서, 또 두 나라가 다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란 점을 감안해서 공식적으로는 한·일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국무부·국방부가 실망을 표시한 데 이어 의회까지 "무책임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요약하면 한국이 동맹인 미국을 힘들고 위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7일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가 아시아에서 광범위한 안보 문제를 야기했다'고 썼다. "이 움직임이 일본을 직접 겨냥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고 북한 도발에 대한 한·미·일의 준비 태세를 부실하게 만든다"고 했다.
청와대는 27일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 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지소미아 종료는 한·미 동맹과 무관한 한·일 관계에서 검토됐던 사안으로 한·미 간 공조와 연합 방위 태세는 굳건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는 이를 정면 반박했다. 그는 "만일 지소미아가 한·미 관계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히 동북아 안보 이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최근 본지 통화에서 "미국은 한국에 더 강하게 나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미국 반응은 날로 강경해지고 있다. 미국은 처음엔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시했고, 이어 '미국과 미군에 대한 위협'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의 독도 훈련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까지 밝히고, 나아가 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오는 11월 22일 전에 한국이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한국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소미아 파기가 외교적으로 유감을 한두 번 표시하고 지나가는 수준의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27일 향후 미국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가 징용 판결 문제와 관련, 어떤 해결 방안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번 한·일 갈등의 출발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 보상 판결인 만큼 한국이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지난달 '삼권분립'을 근거로 "사법부에서 판결한 것을 행정부에서 뒤집을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한 발언과 관련, 이 관리는 "삼권분립의 원조격인 미국에서도 법정 조언자(friend of court)로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7일 "미국과 일본이 모두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면서 "이 결정으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가 됐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이미 여러 도전에 직면한 한·미 동맹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난제를 하나 더 안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한·미 동맹의 미래는 북한보다 오히려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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