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예정대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28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최정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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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들여오는 배터리 소재가 당장 내일 막힌다면 솔직히 답이 없어요.”
한국 경제계가 '깜깜이' 터널 구간에 진입했다. 28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전격적으로 시행하면서다.
기업은 발 등에 불이 떨어졌다. 백색국가 배제에 따른 수출규제로 인해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들은 자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수출규제에 따라 복잡해질 통관 절차에 대비한 시나리오만 검토할 뿐 일본산 소재 대체품 확보 등 구체적인 전략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2차 전지가 대표적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확보한 재고로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가 막히면 결국엔 감산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배터리 기업은 일본에서 수입하던 배터리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해외 공급처 확보에 나섰지만 일본 수준의 품질과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일본산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공급처를 찾아도 미리 주문받은 배터리의 경우 계약 조건을 변경해야 하므로 당장 소재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배터리의 경우 기존 계약을 변경하는 데 있어 길게는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대체 소재를 확보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백색국가 배제에 따라 기업의 하소연이 늘어나고 있는 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품목과 규제 시점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수출규제 장벽을 높일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 경제산업성이 홈페이지를 통해 고시하고 있는 중점 감시 품목 40가지가 문제다. 원심분리기, 인공흑연, 대형트럭이 중점 감시 품목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를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개별 수출 허가 품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원심분리기의 경우 핵폭탄 원료로 사용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는 장비부터 일반적인 화학 공정에서 사용하는 것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를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어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에 올릴지는 일본 정부가 공개하기 전까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기 한국무역협회 혁신성장본부장은 “현재 기업이 겪는 가장 큰 애로는 불확실성이다”며 “일본 정부가 어떤 조치를 추가로 취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경제단체는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 시행에 맞춰 비판 성명을 냈다. 한국무역협회는 “일본 정부가 수출 우대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강행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글로벌 가치 사슬에 큰 충격을 줘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역협회는 “일본 정부의 조치는 외교적 사안을 경제적 수단으로 보복한 것으로 한국은 반도체를 포함해 정보기술(IT), 자동차, 화학 등 주요 산업에서 생산 차질이 예상되고 일본은 3대 교역국인 한국을 견제하느라 수출산업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무역협회는 일본 정부가 조속히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사태악화 방지와 관계 복원을 위한 대회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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