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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취재파일] "원금 손실 0%"에 속아 수천억 날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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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판매한 파생상품 후유증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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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아래서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는 '믿고 맡길만한 투자처'일 것입니다. 위험이냐 안전이냐 각자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국 쫓는 것은 단순합니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수익과 실패하더라도 원금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는 투자 대상입니다. 이 역할을 가장 오랫동안 잘 수행해 온 곳은 은행입니다. 수익은 적지만 적어도 원금 날릴 걱정은 없는 예금과 적금은 예나 지금이나 목돈 마련의 가장 큰 수단입니다.

최근 은행에 대한 비판이 거셉니다. 이름도 어렵고 이해하기는 더 어려운 사모펀드 때문입니다. 은행이 해외 금리와 연관되는 파생상품을 팔았는데 수익은커녕 투자자들의 원금 대부분이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처음부터 시장에 나와서는 안 될 금융 상품이었다는 말도 많은데 이를 설계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보다는 판매한 은행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룹니다. 취재진이 만난 투자자들은 한목소리로 "은행을 믿었는데…"라고 하소연합니다. 은행에 배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 해외 금리 연계 파생상품…기준 맞으면 '수익' 아니면 '원금 손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상품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투자금은 8천200억원이 넘습니다. 현재 상태로라면 절반 이상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사모펀드인 것도 문제입니다. 사모펀드는 49인 이하의 투자자가 각각 최소 1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합니다. 금융감독원은 전체 판매 잔금의 89%, 7천300억 원 정도가 3천600여명의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의 투자금이라고 밝혔습니다. 개미 1명당 2억 원 정도를 투자한 셈이어서 개인들이 억대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 상품.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단어가 조합된 이 금융상품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기준을 미리 정해 놓고 일정 기간 동안 이 기준만 맞으면 수익을 줍니다. 대신 벗어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합니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파생결합증권(DLS)은 주가지수를 기초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과 달리 금리, 환율, 실물자산 등 기준이 되는 기초자산을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주가에 비해 변동성이 큰 지수를 기초로 삼으면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원금의 95% 이상이 손실 날 걸로 보이는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사모펀드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쉽습니다. 투자자는 미리 정한 기준, 금리 -0.25% 이상만 유지되면 연 4%의 수익을 받습니다. 대신 이 기준보다 못 미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합니다. 0.01%씩 떨어질 때마다 250배인 2.5%의 원금을 날립니다. 기준보다 0.4% 이상 떨어지면 투자 원금 전부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금리 이야기를 빼고 투자자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이 상품에 1억 원을 6개월 묻어두면 최대 200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잘못되면 1억 원 거의 전부를 날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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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 전망' 상품도 있었는데…"믿어라"

수백만 원을 벌 수 있는 동시에 수억 원을 날릴 수도 있는 상품에 투자자들이 몰린 것은 판매한 은행의 홍보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독일 국채 금리 연계 파생상품을 판매한 우리은행의 경우 18년 동안의 시뮬레이션 결과라며 만기 상환 확률은 100%, 원금 손실 가능성은 0%라는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손실 날 가능성은 단 1%도 없으니 안심하고 투자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영국, 미국의 이자율 스와프 금리(CMS)와 연계된 파생상품을 판매한 하나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도 쉽지 않은 각종 경제 지표가 빼곡한 상품 설명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은 단 한 줄뿐이었습니다. 1억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목돈이 있는 사람들이 투자할 수 있었는데 실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판매한 상품 투자자의 절반 정도는 노후자금을 가진 은퇴자 등 노령층이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투자자들도 모두 65세가 넘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안전하다는 은행 말만 믿었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은행이 이런 상품을 파는 동안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전망을 내 건 상품이 팔리기도 했습니다. 국민은행은 이들 두 은행과는 달리 오히려 금리가 떨어지면 수익을 주는 상품을 투자자에 권유했습니다. 금리 하락 추세라고 본 것입니다. 또 신한은행의 경우는 아예 해외 금리 연계 파생상품 자체를 판매하지 않았는데 "수익률 대비 손실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투자"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부실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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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는 오직 '투자자 몫'…황당한 말 듣기도

해외 금리 연계 파생상품은 펀드 매니저의 운용 실력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패에 따른 금전적인 손해도 투자자만 봅니다. 상품을 만들고 판매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은행은 상품이 망해도 손실이 없습니다. 설계한 증권사와 운용사는 외국 금융사에 위험을 분산하는 헤지(hedge)를 합니다. 은행도 판매에 따른 수수료 수입만 얻습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따른 우리 국민의 손해액 수천억 원은 반대의 경우, 즉 금리가 떨어질 가능성에 투자한 외국 헤지펀드의 수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생상품에 대한 피해가 오직 투자자에 집중되는 탓일까요. 사모펀드 투자자 중에는 손실을 안긴 은행으로부터 황당한 말을 듣기도 합니다.

66살 박 모 씨는 지난해 11월, 30년 넘게 거래한 IBK 기업은행에서 사모펀드를 권유 받았습니다. 7개월 뒤에 전세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었는데 은행은 "VIP들에게만 추천하는 상품이라며 나도 가입했으니 믿고 하시라"며 1억 원을 투자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딱 하나, 고위험 상품이라 원금 보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억 원 투자해 150만 원 벌려다 자칫 전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투자 결정을 번복하기도 했지만 "안심하셔도 된다"는 말에 결국 투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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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금 손실? 대출받으세요"

이 사모펀드의 이름은 '디스커버리 US 핀테크 글로벌 채권 펀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의 친동생 장하원 전 하나금융연구소장이 운용하는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상품이었습니다. 사모펀드였기 때문에 최소 투자금은 1억 원, 박 씨 같은 투자자들의 자금 2천억 원이 모였습니다. 이 펀드는 이미 만기가 지났는데도 지난 5월에 상환 유예 결정이 나는 바람에 투자자들은 수익은커녕 원금 한 푼 못 돌려받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투자한 사채를 운용하는 미국 회사가 분식회계 등 혐의로 법정관리에 들어가 자산이 동결됐기 때문입니다.

전세금을 돌려줘야 할 시점이 오자 박 씨는 은행을 찾아가 시위를 했습니다. 66세, 이미 은퇴한 노인에게 당장 1억 원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이런 박 씨에게 "당장 돈이 급하면 대출을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은행이 제공할 수 있는 최저금리인 연 2.1%의 대출을 실행할 수 있도록 심사를 넣어보겠다며 "200만 원 정도를 통장에 넣어두면 이자가 자동이체 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박 씨는 "내 돈 가져가서 돌려주지도 않으면서 무이자도 아니고 내가 왜 대출까지 받아야 하냐"며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기업은행 측은 "돈이 급하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의미였는데 아무래도 직원이 실수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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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밭에 홀로 남겨두고."…판매한 은행원들도 '불만'

그렇다고 꼭 투자자들만 마음고생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품을 판매한 은행 직원들도 좌불안석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은행 노조는 은행장과 경영진이 나서 고객과 직원 보호 대책을 직접 마련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직원들에게 핀이 뽑힌 폭탄을 쥐어 주고 사지로 밀어 넣은 것도 모자라 사방이 지뢰밭인 한가운데에 오롯이 홀로 남겨두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상품을 팔게 하고 비판이 거세지자 상품을 판매한 현장 직원들만 감내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노조는 "현장 직원들은 금리 하락 추세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해 4월부터 문제를 인식해왔다"면서 "5% 정도 되는 중도 환매 수수료를 낮춰 손절하게 해서라도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여줄 것을 경영진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경영진의 무능과 안일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은행 측은 원금 손실 위험 등을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불완전 판매' 의혹에 대해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고지했고 본인이 서명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때마다 불완전 판매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판매가 어렵더라도 수익과 위험도를 고객에게 충실히 전해줬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투자했을 때 수익은 얼마, 원금은 몇 퍼센트 손실이 가능한지 미리 정확하게 언급하고 그 상품의 투자 가치에 대해 고객을 설득하는 식입니다. 실제 우리은행의 한 직원은 "손실에 대한 부분은 줄이고 예상되는 수익에 대한 전망은 부풀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금융상품 판매 관행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불완전 판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은행에 두고 실제 인정되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엄격히 제재를 가해야 이런 관행이 뿌리 뽑힐 수 있다"며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은행만큼은 '믿고 맡길 만한 투자처'로 남아야 파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이나 손실에 따른 불만을 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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