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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운동권 세대 끝나야 보수-진보 갈등 사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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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인터뷰]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낸 철학계 거장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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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20일 열린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이야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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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니 거동을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기우였다. 지팡이도 의지하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당당히 걸어오는 100세 노인은 처음 봤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이크를 쥐자 혼자 30분을 쉬지 않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해야 할 게 아니라 그의 생활을 부러워해야 할 판이다.

올해 100세를 맞은 철학계 거장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 얘기다. 그는 최근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2권을 내고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다.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질문자의 물음을 정확히 듣고 논리정연하게 또박또박 답변을 이어갔고, 그 속도도 제법 빨랐다.

책은 고독을 느끼는 젊은 세대에게 바치는 사랑과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엮었다. 한 세기를 살아오면서 그는 어떤 글을 남기고 싶었을까.

“제 인생에서 2가지가 남더라고요. 하나는 격변의 시대에 맞은 정치나 경제 이런 중요한 요소들은 때가 되니 다 사라지는데 인간이라든가 사상, 윤리 문제는 여전히 남더라고요. 50년 전에 쓴 글들을 지금 책으로 낼 수 있었던 배경도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가치들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고등학교 제자’들과의 추억이에요. 아내랑 같이 미국 여행을 했는데, 거기 거주하던 중앙고 졸업생 제자 9명이 1주일간 한 명씩 돌아가며 재우는 거예요. 가장 행복한 여행 일정이었죠. 잊을 수 없는 깊은 서로의 기억이 이런 관계를 맺어줬다고 봐요.”

김 교수는 연세대로 옮겨 대학생을 가르치니 “내가 낳은 아이(고등학생)를 맡기고 떠난 느낌”이라며 아쉬워했다. 삶과 사랑, 철학이 대학 문턱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는 역설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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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하나 없이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또박또박 말하는 100세 철학자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 그는 지난 격변의 100년 세월을 투시하며 "어느 때보다 희망 찬 시대에 사는 지금 젊은이들이 더 많은 용기로 사회와 마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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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와 함께 공부한 시절도 떠올렸다. 평양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중3 때 윤동주와 함께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1년간 학업을 중단하고 그가 한 것은 구립도서관에 가서 매일 책을 보는 일이었다. 그는 “윤동주는 만주로 건너가겠다고 해서 복학에 대한 꿈이 사라졌지만, 나는 1년 뒤에 다시 학교에 다녔다”며 “그 1년의 독서가 오늘의 나를 이끌었다”고 했다.

“일본은 신사참배를 통해 정신을 심어주려고 했는데, 윤동주와 전 거부의 경험으로 나름 민족의식이나 독립정신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그때 도서관에서 읽은 수많은 책에서 사상이나 철학, 휴머니즘을 많이 깨우쳤죠.”

반목, 갈등, 대립 등 요즘 한국 사회에서 심상치 않게 등장하는 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 점령기와 6.25 전쟁을 경험한 그는 역사적 가치의 변화를 통해 이를 설명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좌파 아니면 우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대적 가치가 지배했어요. 이후 좌파는 진보를, 우파는 보수로 바뀌면서 상대적 가치가 함께 존재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북한 정권이 남아 있어 ‘더불어’ 존재한다는 상대적 가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북한은 절대적 가치를 신봉하는데, 남한은 그렇지 않으니 계속 혼란이 커지는 셈이에요. 제 생각에 운동권 출신의 진보 세력들은 선진사회에서 말하는 진보는 아닌 것 같고 좌파적 진보 성격이 그대로 있다고 봐요. 진보는 뿌리가 확실하고 보수 진영은 뿌리가 없으니 운동권 출신 세력이 늙어서 끝나면 보수와 진보 갈등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김 교수는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은 보수-진보 차원의 문제를 넘어 열린 사회-닫힌 사회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역설했다.

“열린 사회로 나아가면 다원 사회로 정착할 수 있어요. 우리가 거기에 도달해야 하는데 앞으로 3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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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간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를 낸 김형석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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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골자가 그렇듯,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궁금했다. 김 교수는 “지난 100년간 돌아보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과거 어떤 때보다 여건이 나쁘지 않다”며 “사회가 힘들더라도 이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고,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후진 국가의 특징은 할 일은 많은데 직장은 없는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자신 인생의 표준을 ‘어디에’ 두지 말고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무엇을 믿고 사는가’를 묻는다면, 저는 선의의 경쟁을 통한 자유, 인간애가 발휘되는 평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불행은 곳곳에서 일어날 겁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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