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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미투운동은 혁명적…지나가는 유행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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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하늘색 하이힐에 반짝이는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걸어 들어왔다. 나이지리아 출신 페미니즘 소설가로 문학, 사회운동, 패션을 넘나드는 세계적인 인플루언서가 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42). 인스타그램 폴로어가 42만여 명이고 보그 표지를 장식하는 이 스타 소설가가 최근 출간된 '보라색 히비스커스'(민음사 펴냄)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그는 2박3일의 짧은 일정 동안 한국 여성운동가들과 만나고 강연도 한다. 19일 서울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예의 화려한 패션과 꾸밈새를 자랑하며 밝은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한국 스타일을 좋아하고, K뷰티 팬이다. 쇼핑도 꼭 하고 싶다.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왔다. 나이지리아와 한국 간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가톨릭 영향이 있어서인 것 같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존스홉킨스대와 예일대에서 문예창작과 아프리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나이지리아의 엄격한 상류 가정 출신 소녀의 정신적 독립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로 데뷔했다. '아메리카나'는 뉴욕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으로 뽑혔고 전미비평가협회상도 받았다. 이 미국의 가장 '핫'한 소설가는 동시에 페미니즘 운동가이기도 하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됐다. 이날 기자들도 페미니즘에 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었다.

그는 여성운동으로 인해 자신이 나이지리아에서 '악마'로 불리는 것에 대해 "악마라고 불려도 괜찮다. 내가 페미니즘 발언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다. 그 세상을 앞당기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나로 인해서라면 좋겠다"고 '쿨'하게 답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성평등을 완벽하게 성취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법과 제도, 정책을 바꿔야겠지만 문화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스토리텔링이 아닌가. 그래서 (문학에서도) 페미니즘을 끌어안아야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여성들은 늘 자신이 겪은 성폭력의 공론화를 망설이고 있었는데 미투 운동으로 처음으로 여성의 말을 믿어주기 시작했다. 가히 혁명적이지 않나. 진심으로 이 운동이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운동이 되길 희망한다."

한국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번지고 있다. 강요된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 그는 "여성에게 너무 엄격한 사회적 기준이 강요돼선 안 된다. 그래서 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여성들을 존경한다"고 응원했다. "이 운동이 시사하는 바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뒤, 내 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패션에 대한 관심을) 커밍아웃 했다. 여성들에게 다양성이 허락돼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유학을 떠난 나이지리아 대학생 이페멜루가 인종과 여성 차별 등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청춘일기를 그린 대표작인 '아메리카나'는 브래드 피트의 제작으로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 아디치에는 "흑인들의 사랑과 아프리카라는 맥락을 다룬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알려질 기회를 얻어 기대된다"면서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가는 건 가난, 전쟁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인간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자전적 요소가 짙은 소설이다. 극 중 아버지는 정의롭지만 폭력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는 "많은 이가 오해를 하는데 내 아버지는 실제로는 신사적이고 선하신 분이다. 저는 끔찍이 아빠를 사랑하는 파파걸"이라면서 "이 소설을 통해 종교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종교가 인간에게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게 하는지, 신앙심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일과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후속작 계획을 물어보니 그는 "내게는 징크스가 있다. 완성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면서 웃었다. 하반기 그를 기다리는 건 10년째 매년 진행하고 있는 창작 워크숍이다. 그는 "올해는 12월에 할 계획이다. 작가 지망생들과 소통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워크숍인데, 포커스는 아프리카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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