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봇물 터진 직장 갑질 제보…무마하려 ‘2차 괴롭힘’ [뉴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한달 / CCTV 감시·강제 음식 먹이기… / 하루 102건꼴… 한달 새 58% 증가 / 갑질 신고 “개인적 갈등” 무마 시도 / 재차 이의 제기하자 되레 협박도 / 취업규칙 개정 안 한 사업장도 많아

세계일보

한 민간연구원 사무직으로 입사한 A씨는 회사 대표의 잦은 괴롭힘에 시달렸다. A씨는 매일 대표실로 불려가 다른 직원에 대한 뒷말을 들어야 했고, 업무에 문제를 제기하면 소리를 지르며 모욕하기 일쑤였다. 대표는 퇴근 후, 주말, 휴일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직원들에게 카톡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다. 작은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보안을 이유로 화장실 입구 등에 폐쇄회로(CC)TV를 10대 이상 설치하고 실시간 직원을 감시했다. 직원들이 배탈, 치아 문제 등으로 인해 음식 먹기를 거부하는데도 끝까지 음식을 먹도록 강요하거나 먹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와서 강제로 먹이기까지 했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직원 B씨는 지난 4년 동안 다른 부서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이 시행된 지난달 B씨는 회사 인사팀에 공식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나 인사팀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을 듣고 “개인적인 갈등에 불과하다”며 무마하려 했다. B씨는 이달 인사팀에 재차 신고했고 인사팀은 괴롭힘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라고 해서 부서 팀장에게 증언을 요청했다. 그러나 팀장은 이를 거절하며 “너 때문에 나랑 인사팀이 안 좋은 상황에 부닥쳤다. 넌 큰 실수를 한 거”라며 피해자를 되레 질타했다.

세계일보

지난달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정근로기준법 이른바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이 실시됐지만 여전히 ‘직장 내 갑질’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16일부터 약 한 달간 접수된 제보를 분석한 결과 총 1743건이 집계됐다고 15일 밝혔다. 직장갑질119가 운영되지 않는 주말 및 여름휴가 기간(13일)을 제외하면, 접수된 제보는 하루 평균 102.5건으로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이전(하루 평균 65건)에 비해 57.6%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 제보는 1012건으로 58.1%를 차지했다.

세계일보

괴롭힘 유형별로 살펴보면 부당지시가 220건(12.5%)으로 가장 많았고, 따돌림·차별(200건·11.5%)과 폭행·폭언(177건·10.2%), 모욕·명예훼손(129건·7.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 회사에서 수습으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발령받은 C씨는 “법이 통과된 후에도 대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C씨가 다닌 회사는 10인 이상 사업장임에도 법 개정 이후에 취업규칙을 개정하지 않았다. 대표는 C씨를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은 부서로 발령을 내고, 컴퓨터에 업무용 프로그램도 설치해 주지 않다가 결국 권고사직을 요구했다. C씨가 사직을 거부하자 대표는 ‘직장 분위기 훼손’을 이유로 해고를 통보했다.

세계일보

직장갑질119는 “기존에는 임금체불, 부당징계 등과 관련한 제보가 많았으나 법이 시행된 이후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제보가 급증했다”며 “기존에는 갑질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노동자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10인 이상 사업장 전수조사를 통해 취업규칙을 개정하지 않은 회사를 기소하고, 직장갑질 혁신을 위해 사장의 갑질에 대해서는 관용 없이 엄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장갑질 119는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가운데 사안이 중한 경우 증거자료 등을 수집해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구하고, 비교적 사안이 가벼운 사례에는 당사자에게 신고 방법 등을 안내할 계획이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