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 광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했지만, 고작 국산 운동화를 팔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은 지옥같은 경험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동원한 천박함은 나의 기억 속에 길이 남았다.
내가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들에 냉담해진 것은 이런 기억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애국은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곳곳에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겠다는 악당들이 출몰해 웃기지도 않은 티셔츠를 팔거나, 인기를 얻으려 날뛰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데다, 국적이라는 것이 변경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누구나 쉽게 옷을 갈아입듯 국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와 나를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 것이 가능한 것도, 또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문제들은 일본과 전 정권들이 만들어 냈다. 더 깊이 기원을 따지자면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전후 냉전구도 속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원했던 미국의 압력이며,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길 원했던 독재정권의 협잡의 산물이다.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하고 힘과 돈의 흐름이 과거와 달라진 덕에 봉합되었던 문제가 마침내 파열음을 일으키며 튀어나왔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힘을 모으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 기준이 굴종이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와 대의명분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과열된 흐름과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지도층에서는 선언적이고 과격한 발언과 조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는 보수정당과 한국 극우들의 책동에는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 싸움에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지나치게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까지도 느낀다.
싸움을 안락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를 대비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들을 보면 모두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염두에 둔 것들뿐이다.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희생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벌과 국가의 책임을 시민들의 몫으로 돌리고, 개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정작 한국의 재벌과 고위층은 위기를 통해서도, 또 위기 극복을 통해서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부를 쌓았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이토록 낮은 것에는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 내내 국가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버림받았던 배신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파국은 공평하게 오지 않으며, 언제나 약자들의 삶을 먼저 집어삼킨다는 교훈을 한국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뼈아프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모든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격차가 발생한다. 이 격차가 불합리하고 클수록 그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해체된다. 격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모든 공동체가 맞이한, 그리고 어쩌면 그 공동체의 핵심을 결정하는 문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위기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부와 권력을 취할 생각에 들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이야말로 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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