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고법, 고리원전 주민 배상 판결(1심) 뒤집어
원고 “한수원 주장 인정하고 책임 면해줬다” 반발
부산 기장군의 고리원전. 맨 오른쪽이 지난해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다.[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살다가 갑상샘암에 걸린 주민에게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암 발병과 원전에서 배출되는 방사성 물질 피폭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2014년 1심 법원이 갑상샘암에 걸린 고리원전 인근 주민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4년 8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다.
부산고법 민사1부(김주호 부장판사)는 고리원전 인근에 살다 직장암에 걸린 이진섭(53)씨와 발달 장애가 있는 아들 균도(27)씨, 갑상샘암에 걸린 아내 박모(53)씨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의 소송 비용은 모두 원고가 물게 됐다.
재판부는 “피고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이 측정한 고리원전 인근 주민의 피폭선량(전신)은 연간 0.00140∼0.01510mSv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연간 기준치(0.25∼1mSv) 이하이자 가공제품에 의한 일반인의 피폭선량(1mSv) 이하”라며 “그와 같은 피폭선량으로 인해 갑상샘암 발병이 증가할 확률은 우리나라 국민의 평생 암 발생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연간 1mSv 이하 수준의 고리 원전 인근 주민 방사선 피폭과 암 발병 여부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아무런 조사·연구 결과가 없다”며 “개인이 특정 위험인자에 노출된 사실과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14일 탈핵시민연대 등이 부산법원 앞에서 팔결에 불북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
재판부는 박씨가 주로 거주했던 근거리 대조지역(고리원전 반경 5∼10㎞)의 여성 갑상샘암 발병 상대 위험도가 주변 지역(고리원전 반경 5㎞ 이내)의 상대 위험도(2.5)보다 낮은 1.8인 점, 갑상샘암 발병과 피폭선량 사이 정비례 관계 여부를 입증할 연구 결과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박씨의 갑상샘암 발병과 방사성 물질 피폭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아울러 원고 이씨 부자의 경우에도 1심과 항소심에 제출한 증거와 현재까지의 국내외 연구·조사결과만으로는 원자력손해배상법 등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씨 가족은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갑상샘암 등에 걸렸다며 2012년 7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직장암에 걸린 이씨와 선천성 자폐증으로 발달 장애가 있는 아들 균도(27)씨의 손배소를 기각하고 아내 박씨에게 배상 책임(1500만원)만 인정했다.
2심 판결이 나오자 이씨 측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겠다”며 상고할 뜻을 내비쳤다. 탈핵 부산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선고 직후 부산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한수원의 거짓말을 사실로 인정하고 책임을 면해줬다. 이번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전국에서 원자력발전소 인근에 거주하다가 갑상샘암에 걸린 주민 618명이 한수원을 상대로 공동으로 제기한 부산지법 동부지원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