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이후 매주 수요일엔 늘 그랬듯, 14일 오후 12시에도 어김없이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그동안 시간은 흘러 시위는 1400회를 맞았다. 1400번의 수요시위가 이어질 동안, 매주 시위를 지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들은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났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240명의 피해자 중 생존자는 20명 뿐이다.
14일로 1400회를 맞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옆에서 약 2천여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사진은 집회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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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는 세계에서 동일한 주제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시위다. 2011년 1000회 시위까지 할머니들은 단 한 주도 수요시위를 거르지 않았다. 이후에는 할머니들의 노환과 질병 등으로 참석 횟수가 줄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수요시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는다. 지난달 열린 1395회 수요시위에는 이옥선(92) 할머니가 참석했고 이날 1400회 시위에는 길원옥(92) 할머니가 참석했다. 길 할머니는 “더운데 와줘서 고맙습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말에 시민들은 큰 소리로 “할머니 사랑합니다”라고 화답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피해자의 Me Too에 세계가 다시 함께 외치는 With you! 가해국 일본정부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주제로 제140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인파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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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특보가 내려진 이날 34도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 2만명(주최측 추산)이 시위에 참석했다. 옛 일본대사관 위치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앞 삼거리까지 인파가 끊임없이 들어찼다. 미취학 아동부터 중ㆍ고등학생, 대학생, 중년과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인 이들에게서 한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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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연대가 된 할머니들의 외침
14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1천400회 수요시위와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이 연대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시드니 '위안부' 연대집회에서 발언하는 로버트 오스틴 박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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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한복판에서 시작됐던 할머니들의 “일본은 사죄하라”는 외침은 이제 세계가 연대하는 구호가 됐다. 이날 같은 시각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다. 이날 수요시위는 9개국 21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세계연대시위 형식으로 진행됐다. 대만에서 보내온 영상에는 “대만에는 이제 두 분의 위안부 피해자가 남았다. 일본 정부가 책임질 때까지 계속 외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각국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지지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의 증언이 성폭력에 맞서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날 북측의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가 전해온 연대 메시지도 공개됐다. 이 단체는 “일본은 패망한 지 74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성노예 범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1400차 수요시위 및 연대집회가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여러 나라와 공동행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며 “피해자들이 남긴 원한과 온 민족에 쌓인 분노를 폭발시켜 범죄에 대한 대가 받아내기 위한 투쟁에 겨레가 떨쳐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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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는 수요시위 됐으면"
14일 1400회 수요시위에 참가한 시민들.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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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아래서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킨 시민들은 연대 메시지나 지지 발언이 끝날 때마다 ‘노란 나비’ 모양 종이를 흔들며 화답했다. 학생 참가자들은 ‘평화의 길 우리가 이어나간다’, ‘사과가 그리 어려운가요’ 등의 손 피켓을 직접 만들어왔다.
이날 할머니들을 기리는 공연을 했던 김다은(17ㆍ인명여고 2학년) 양은 “반 친구들끼리 마음을 모아 한 달가량 연습했다”며 “평소 수업시간에 이와 관련된 역사에 대해 배우기도 했지만,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9살 딸의 손을 잡고 참석한 이윤정(37)씨는 “딸에게 이와 관련된 역사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현장인 것 같아 함께 왔다”며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수요 시위를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게 슬프다. 딸이 어른이 됐을 때는 사과도 배상도 이뤄져 눈물 없는 수요시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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