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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제의 충북경제 식민지화 실태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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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권력 일본인, 소수의 친일 한국인에게 집중"

충북학연구소, 1923년 발간된 '충북산업지' 편역·발간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과 일본 기업이 충북지역 산업 전반에 진출, 지역 경제를 잠식했던 사실이 사료를 통해 재차 확인됐다.

연합뉴스

[충북학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충북연구원 부설 충북학연구소는 13일 일제 강점기 때인 1923년 발간된 사료인 '충북산업지'를 한글로 편역·발간했다.

이 사료는 발굴이 늦어져 충북향토사나 도지, 시·군지 편찬 때 활용되지 못했는데, 일제의 충북경제 침탈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료 제3편 '사업과 인물' 편에는 고위 공무원, 판·검사, 군인, 의사, 사업가 등 188명의 기록이 나와 있다.

이들 중 86명이 일본인이다. 한국인은 32명인데, 이 중 11명이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당시 도내에 거주했던 일본인은 인구 대비 0.8%인 6천410명이었는데, 이들이 공업의 11.2%, 상업·교통의 7.4%, 공무자유업의 20.5%를 차지했다고 한다.

충북학연구소는 "부와 권력이 일본인, 그리고 소수의 친일 한국인에게 집중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충북에는 옥천의 흑연광산과 충주의 텅스텐광산 등이 있었는데, 모두 일본인이 경영했다.

사료에는 지하자원 개발 필요성도 언급돼 있는데, 일본인이 광업권을 틀어쥐고 군수용 자원 침탈을 강화했던 것으로 이 연구소는 강조했다.

충북의 금융계 요직도 일본인이 틀어쥐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식산은행, 충주식산은행, 청주실업은행 지점장과 금융조합연합회 이사장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지역별 금융조합의 조합장도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설령 조합장을 맡지 않았더라도 이사 등을 자치, 경영에 관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청주상업회, 충주번영회, 영동번영회 등 상업조합 역시 일본인이 주도하는 형태였다.

충북학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인이 상업조합을 주도하면서 충북의 산업 전반에 걸쳐 일본인이 활동하기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철도 부설 역시 '조선 경영의 성공 여부를 생각할 수 있는 대사업'이라는 내용이 이 사료에 담겨 있다.

종교 탄압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사료에 포함돼 있다.

스님을 '탁발하는 기생충'으로 묘사하면서 "일본 불교를 확대해 제국의 둘도 없는 양민이 되게 해야 한다"는 문구와 기독교인을 '외국인을 고급 민족으로 인식하며 그 속에 숨어 헌병에 항거하는 사람들'로 표현한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사료에는 일제 식민통치가 충북산업과 미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일제의 산업 침탈과 그들의 식민지화를 미화·선전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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