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심장/박송이 지음/파란 |
아픔 없이 읽어내기가 어려운 시가 있다.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달콤한 사랑의 노래인 듯하지만 그 처연한 음성과 깊은 곳을 찌르는 정서의 칼끝 때문에 기어이 통증을 지워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승자의 시집을 읽어나갈 때. 한 편을 읽고 숨을 고르고, 또 한 편 읽고 숨을 고르지 않으면 끝내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등단한 지 8년 세월이 지났지만 시집은 처음 내는 시인의 시선과 손톱 끝으로 그어 나간 것 같은 시어에서 통증과 흡사한 정신의 생채기를 감지하는 일은 예사롭지 않은 경험이다.
박송이의 시편들은 독자의 의식을 온전히 지배한 채 서서히 암전하는 이미지의 트랙이다. 젊지만 풋내가 나지 않고 가차 없지만 피비린내 같은 것은 찾기 어려운 세계. 견딜 만하지만 어항 속 붕어처럼 숨을 자주 고르지 않을 수 없는, 애매한 고도에서 느끼는 편두통 같은 것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의 첫 시집 '조용한 심장'은 이토록 강한 아귀힘으로 독자를, 시집을 메운 작품들을, 나아가 시인 자신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작고 희고 축축한 손. 하지만 그곳 어디에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깃들여 끝내 시집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나무가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호스피스에서 엄마가 말했다
떨구는 몸을 닮아야 하기 때문이지
떨어지는 산소 포화도가 말했다
그건 뒷굽이나 동전 가령
지우개 똥 같은 데
마음을 쏟는 일이야
향이 재가 되면서 말했다
나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아
숲은 혼자 울지 않기 때문이지
오동나무 관 뚜껑을 닫으며
울면서 상주가 말했다
죽은 몸보다 위태로운 건
한없는 외로움이지
남은 문상객이 말했다
참 뜨거운 인생이었어
불타면서 오동나무가 말했다
밥! 밥! 밥!
배고픈 딸이 울었다
딸이 우니까 젖이 돌았다
납골당 한여름 속에서
이파리들이 벚나무를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회전목마'
그것은 비밀일까. 문학평론가 기혁은 박송이의 시집을 읽고 "타자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언어에 대한 천착이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사랑의 시편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만약 여기에 동의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시집의 가장 처음에 배치된 시편부터 다시 읽는 기쁨 속에서 '꽃'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사랑'처럼, 꽃도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우주의 골방에서/우리'가 '이미 장애를 앓는 꽃'이라면 '꼭꼭 숨은 나이테 속'에는 '한 구절로 부족'한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썼다. 아, 아름다워라.
시인 이현승은 추천사에 "제 외로움의 아픔 속으로 자맥질해 가서 거기서 더듬더듬 한 조각의 미래가 명멸하는 것을 보는 그 전율의 순간에 시가 있었다면, 그는 이후로 풍파와 공허와 이토록 을씨년스럽고 비루한 고독을 견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직 시만이 그에게 고드름 같은 휴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 외로움 속에서 다른 외로움을 마주쳐야만 하는 것이 고드름이지만 고드름이라는 한 형식이 또한 하나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불행조차 존재의 거푸집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얼어붙은 눈물의 결정이면서 다른 눈물의 젖줄을 대는 '고드름'이 또한 박송이이며 박송이의 시"라고 적었다.
박송이는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나 순창에서 자랐다.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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