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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7년](2)“벌점으로 학생 통제하는 선생님과의 ‘갑을관계’ 바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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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말하는 인권조례

인권조례 일부러 모른 척…학생 말 존중 않고 자기 의사 표현 땐 불이익

일방적 억압에 문제 제기할 뿐인데 ‘교권 침해’ 우려하는 건 이해 안돼

조례 잘 지키는지 교육청이 감시해야…성적보다 학생 자체를 봐줬으면

경향신문

세그루패션디자인고 조서희, 태릉고 유지선, 선린인터넷고 송여진, 원묵중 정철원 학생(왼쪽부터)이 지난 7일 서울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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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12년 1월 제정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과 존엄을 강조한다. 조례는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학칙은 학생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고 한다.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교칙’보다 힘이 없다.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와 벌점으로 통제받는 대상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7일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서울시내 중·고교 학생 4명을 만나 학생인권조례의 현실을 물었다. 태릉고 2학년 유지선양(17), 선린인터넷고 2학년 송여진양(17), 세그루패션디자인고 3학년 조서희양(18), 원묵중학교 3학년 정철원군(15)이다. 전국중고등학생진보동아리총연합회 소속인 이 학생들은 ‘2019 학생인권조례 실태조사’(경향신문 8월9일자 10면 보도)를 주도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학생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을 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이름, 학교, 사진 공개를 허락했다.

- 학생인권조례가 지켜지나요.

조서희 = 안 지켜져요. 반마다 돌아가며 아침 일찍 학교를 청소했어요. 1학년 때 이 ‘조기청소’에 15분 정도 늦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교실 뒤쪽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50번을 하게 하고 반성문을 3장 쓰라고 했어요.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게 수치스럽고 무서웠어요. 이후로 그 선생님을 볼 때마다 토악질이 나오려고 하고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어요. 야간자율학습(야자)은 지난해까지 강제였어요. 야자를 안 하면 ‘취업점수’를 깎았어요. 취업점수에 따라 기업에 추천서를 써주니까 억지로 해야 했어요. 선생님들이 1주일에 1~2번쯤 수업시간에 불쑥 들어오셔서 화장, 손톱, 복장을 ‘불심검문’하기도 했죠.

송여진 = 우리 학교는 특성화고라서 여학생이 적어요. 우리 반은 23명 중 여학생이 6명이에요. 여자라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해요. 입학해서 ‘기능대회 준비반’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여학생은 지원할 수 없다”고 했어요. 여자는 쉽게 포기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모두가 평등하게 공부하려고 학교에 모인 건데 성별만으로 차별받으니까 몹시 화가 났어요.

유지선 = 지난 5월쯤 치마를 짧게 입은 친구에게 선생님이 ‘이렇게 입고 다니면 남자애들이 좋아할 것 같냐’고 했어요. 학생인권조례의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까 선생님께 아무 말도 못했어요.

정철원 = 여학생들은 화장품을 선생님에게 걸릴까봐 화장실에 둬요. 발견되면 싹 버려져요. 선생님들이 아침 조회시간에 방송으로 ‘화장실에 있는 화장품을 가져가면 벌점을 주고, 안 가져가면 모두 폐기하겠다’고 협박해요.

- 학생인권조례가 왜 안 지켜질까요.

정철원 = 선생님이 학생인권조례가 있다고 학생에게 알려주지 않아요. 알려지면 아이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아니까 숨기는 것 같아요.

조서희 = 학생인권조례를 알면 학생들의 반발심이 커져 이상한 시위나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일부러 모른 척한다고 봐요. 학생들이 모르면 더 지도하기 편하고 공부에만 집중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유지선 = 선생님이 학생 말을 존중하지 않고 벌점으로 통제해요. 친구들은 자기 의사표현을 하면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해요. 인문계 학교는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가 중요한데 선생님께 따지면 생기부에 나쁜 말을 쓸까 봐 몸을 사리는 거죠. 선생님도 학생을 벌점과 생기부로 편하게 훈육하니까 굳이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없죠.

송여진 = 옛날에는 단순한 체벌이었다면 이제는 미래와 직결되는 대학 입학이나 취업에 불이익을 주니까 저항할 수 없어요.

- 인권을 침해당하면 어떻게 하나요.

정철원 = 자유를 추구하는 친구들은 ‘이게 왜 벌점이냐’고 선생님께 따지는데 ‘교사지시 불이행’이라고 또 벌점을 줘요. 벌점이 커지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선도위에 넘겨지면 학교에 못 나올 수도 있으니까 무섭죠.

유지선 = 부당하게 벌점을 받아도 따지면 벌점을 더 받으니까 입을 다물죠. 선생님마다 벌점 기준이 달라요. 그냥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교사지시 불이행’이라고 벌점을 주는 선생님도 있어요.

송여진 = 선생님은 학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존재니까 아무 말도 못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징계를 받으면 생기부에 영원히 남는다’고 말해요. 생기부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기록이 평생 남는 게 무섭죠.

조서희 = 제가 야자를 빠지고 싶어 선생님께 말을 해도 똑같은 말씀만 계속하시더라고요. 참으라고. 사회에 나가서도 작은 일에 이럴 거냐고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넘기시니까 학교에 대한 신뢰가 깨졌어요.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따져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조례도 말뿐이고 별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철원 = 학생인권이 억압당하고 교권이 더 우세한 상황인데 이해가 안 가요. 이상한 이유로 벌점을 주면서 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한다는지 모르겠어요.

유지선 = 학생 의견도 중요한데, 학생 권리는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아요. 선생님 권리만 앞세우면 학생의 반발심도 커져요. 선생님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강압적인 방법보다 다른 방법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여진 = 학생인권조례를 아는 학생이 거의 없는데 과연 ‘교권을 침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학생을 억압하는 게 교권은 아니잖아요. 일방적 억압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교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이상해요.

조서희 =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교권침해보다 학생인권침해를 많이 겪었거든요. 교권보다 학생인권이 훨씬 약하지 않나요. 학생인권조례를 활성화하면서 학생도 나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어요.

조서희 = 몹시 차별적인 말 아닌가요. 사랑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자라는 학생에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요. 사랑은 자연스러운 거죠. 어떻게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정철원 = 동성애를 조례로 열어준다고 해서 학생들이 갑자기 동성을 좋아하는 일은 안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유지선 = 조례가 있다고 학생들이 ‘동성애를 대놓고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은 안 해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숨기지 않을까요.

송여진 =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규칙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요. 규칙이 의미가 없어요.

- 학생인권조례는 왜 필요한가요.

송여진 = 조례가 대단한 내용이라기보다 학생이 침해받을 수 있는 권리들을 정의해놓은 거잖아요. 조례가 아예 없으면 교사도 학생도 인권을 생각하지 못하니까 학교가 더 안 좋아질 거예요.

유지선 =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은 아직도 체벌이 있다고 들었어요. 조례가 없는 학교에서는 체벌이 잘못됐다는 인식조차 못할 수 있어요.

정철원 =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꾸 자기가 살아왔던 시대를 강요하는 것 같아요.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고 꾸미고 싶은데 어른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막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조서희 =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경우가 많아요. 어른들이 자신은 학창시절 부당한 일을 겪지 않았는지 한번만 생각해보면 조례가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아실 것 같아요.

- 학교가 학생인권조례를 잘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지선 = 친구들이 아무도 조례를 몰라요. 그래서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학교 자치시간에 학생인권조례를 교육한다든지 해서 널리 알리도록 조례에 명시해야 할 것 같아요. 교육청이 조례를 지키지 않는 학교 명단도 공개하면 좋겠어요. 학교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조례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정철원 = 학교가 조례를 안 지켜도 처벌할 수 없잖아요. 선생님이 조례를 안 지키면 확실한 불이익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봐요. 교육청이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조례가 지켜지는지 점검하면 좋겠어요. 불이익이 무서우니까 솔직히 신고할 애들은 많이 없거든요. 학생이 나서기 전에 교육청이 발벗고 나서줬으면 좋겠어요.

송여진 = 학생들이 학교나 교육청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신고해도 누군지 찾아내지 않겠냐면서요. 선생님이 ‘누가 뭘 썼는지 다 찾아낼 수 있다’고 해요. 학생이 의견을 올리는 교원능력개발평가도 있지만 어차피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적게 해서 전혀 소용이 없어요.

조서희 = 학생들이 조례를 잘 알아야 학교도 함부로 대하지 않죠. 학교가 조례를 잘 지키는지 교육청이 감시를 더 자주 해야 할 것 같아요. 조례가 지켜지기만 해도 좋은 학교생활이 보장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어떤 학교를 바라나요.

정철원 = 문제아든 모범생이든 모두가 똑같은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학교면 좋겠어요.

유지선 = 학교가 학생을 성적순으로 차별하지 않고 그 학생 자체를 봐줬으면 해요. 행실과 상관없이 성적이 좋으면 ‘우등생’이고, 성적이 나쁘면 ‘열등생’이에요.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고 선생님도 학생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송여진 = 벌점을 걱정하면서 등교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를 원해요. 어른들은 학생인권을 너무 보호하면 ‘양아치’가 될까 봐 걱정하는데 지나친 걱정 아닐까요. 인권이 학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조서희 = 저는 선생님과 학생이 ‘갑을관계’가 아닌 자율적인 학교이길 바라요. 선생님에게 의문을 제기하면 ‘선생님 말에 토 달지 말라’고 하니까 갑을관계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성인은 법으로 보호받는 인권을 학생이라는 이유로 보장받지 못해서는 안된다고 꼭 말하고 싶어요.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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