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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일본군 ‘베트남 위안소’ 문서로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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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 하이퐁 주둔 프랑스군 첩보보고서 발굴

장소·자금 출처 명시…“신원 불명 여성 25명” 언급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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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위안소를 설치한 사실이 프랑스 공식 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굴된 사료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2일 일본군의 베트남 위안소 설치 관련 기록이 담긴 프랑스 해외영토자료관(ANOM) 발굴 자료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1940년 10월부터 1941년 2월 사이 베트남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이 일본군 동향 등을 기록한 군 첩보보고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파리 7대학 마리 오랑주 교수, 재불 사학자 이장규씨 등과 협력해 이 자료를 발굴했다.

일본군은 1940년 9월 북부 베트남에 진주했고, 1941년에는 남부 베트남까지 점령했다. 베트남 하이퐁을 시작으로 박닌, 하노이 등이 차례로 일본에 넘어갔다. 1940년 10월7~10일에 작성된 하이퐁 주둔 프랑스 군보고서에는 위안소 설치 장소와 자금 출처까지 명시돼 있다. 보고서는 일본군의 이동 상황과 함께 “일본 육군과 해군이 각각 ‘위안소(Maisons de Tolerance)’를 설치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장교, 하사관, 사병 등 세 종류의 위안소가 설치될 것이며, 자금은 폴 버트 거리에 있는 환전소를 통해 조달할 예정”이라고도 적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베트남을 점령한 직후 위안소를 설치한 셈이 된다.

보고서에는 일본군이 베트남 박닌, 하노이에 설치한 위안소가 표기된 지도(사진)도 담겼다. 일본군 기지 배치도인 이 지도들을 보면 박닌의 위안소는 일본군 기지 경계지점에 붙어있었고, 하노이 위안소는 다른 일본군의 주요 시설들과 함께 시내에 설치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1941년 2월 작성된 보고서에는 “하이퐁항을 통해 간호사 70명과 함께 신원 불명의 여성 25명이 도착했다”고 적혀있다. 연구진은 “프랑스 군보고서가 일본군과 관련된 내용만을 추린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여성이 일본군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하다”며 “간호사와 구분되는 군 관련 여성들은 ‘위안부’ 외에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위안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그동안 구술 등에서 부분적으로 알려진 베트남 지역의 일본군 위안소 설치 사실이 프랑스군 공식 문서를 통해 최초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일본군 위안소 설치의 실질적인 주체가 일본군이었음을 확인해주는 또 다른 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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