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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굴기의 꽃산 꽃글]염소와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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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진옥


지난 하루를 되짚어본다. 깜깜한 밤을 지나 새벽에 눈을 떴다가 한숨 더 잤다. 날이 훤해지고서야 알람의 독촉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멀리까지 신호를 보낸 뒤 바닥을 짚고 일어나 직립했다. 달그락달그락 밥그릇을 비우고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검은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은 玄關으로 쓴다. 왜 ‘검을 현’일까.

우리는 통상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처음 현을 만난다. 저 천자문의 첫 대목에서 玄을 ‘검을 현’으로 훈을 달면서 그저 ‘검다’라고만 이해한다. 하지만 하늘을 형용하는 검다, 라는 말은 가물가물하다, 라는 뜻에 가깝다. 아득히 멀고 깊어서 가물가물한 경지를 玄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멀고 깊으면 검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기도 하겠다.

그제 절친한 꽃동무가 산에서 만난 염소를 찍은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녹색을 배경으로 까맣기 그지없는 어미 염소가 더욱 까맣게 압축된 새끼 염소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염소는 ‘검다’라는 형용사의 우두머리인 양 온통 까맣다. 털은 물론 온몸이 구석구석 새까맣다. 염소는 마침내 똥마저 검은 것으로 생산한다. 검은색이 거느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통하고 우뚝한 존재.

한편, 까망이 장악한 풍경에서 아는 식물을 하나라도 찾으려니 염소 뒤에 앉아 있는 고사리가 보인다. 염소와 같이 소과(科)에 속하는 양의 이빨을 닮았다는 양치식물의 대표 격이다. 우리나라에 무려 350여 종이나 자생한다는 고사리 앞에서 내가 깜깜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실감한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고사리라고만 여기에 적을 뿐.

흑(黑)과 현(玄)의 차이처럼 블랙과 다크는 확실히 구별된다. 염소의 털은 블랙이지만 눈은 다크라고 해야 함이 옳다.

우리는 아침에 현관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가, 저녁이면 현관을 닫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집과 세상 사이의 현묘한 문(門)인 현관을 玄關으로 표기하는 건 참 적절하다 하겠다. 눈알마저 새까만 염소 가족을 보면서 현관 바깥을 거니는 나를 겹쳐보느니, 지금 대체 어느 소용돌이 속을 나는 깜깜 헤매고 있는 중이더냐!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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