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학회에서 백일초로 부르기로 한 ‘백일홍’과, 정식 명칭이 배롱나무인 ‘목백일홍’도 초여름부터 가을 전까지 백날 피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백일초는 한 꽃이 길게는 한 달가량 꽃피고 그 사이 군락의 다른 꽃대에서 다른 꽃들이 피고 지면서 오래 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배롱나무 역시 가지마다 잔꽃이 꽃차례로 층층이 피고 지기를 거듭해 꽃 뭉치마다 오래오래 피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석 달 열흘, 백날 피는 꽃은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배롱나무는 어느 정도 크면 껍질을 벗어버려 몸피가 매끈합니다. 그래서 유생과 승려들이 허물과 허울 없이 살고자 향교나 서원, 사찰에 많이 심었지요.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코코샤넬도 ‘20대 얼굴은 자연이 준 것이지만 50대는 자신이 만든 것’이라 했습니다. 살아 내는 날들은 나이 드는 얼굴에 골골이 새겨집니다. 사납고 탐욕스레 산 얼굴은 누구에게나 보이죠. 돈다발과 이름값, 비싼 꽃단장과 명품양복으로 회칠한들 조화(造花) 같고 미련스러운 노추(老醜)가 보입니다. 아직 배롱나무 꽃 한창인 늦여름입니다. 눈감을 때면 모두에게 인생 거울이 저승꽃에 비춰질 테죠.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구 삶이 가장 예뻤니?”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