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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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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니 "건강해 보인다"는 말 들어…비결은 ’삼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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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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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아침식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침을 거르는 직장인이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잘 차려먹기는 힘들더라도 뭐든 챙겨먹어 몸에 무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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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커피 내리는 동안 냉동실의 베이글을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4등분 해 프라이팬에 굽고 달걀을 1인당 두 개씩 부친다. 좀 여유 있으면 인스턴트 수프도 끓이고, 시원한 게 필요할 때는 커피 대신 우유다. 치즈, 버터, 잼이 차려진 쟁반을 꺼내면 아내와의 아침 식탁이 완성된다.

잠에서 깨어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아침, 깔깔한 입맛에도 크림치즈를 두껍게 바른 베이글은 쌉싸름한 커피와 함께 질겅질겅 씹어 넘길 만하다. 점심은 제대로 밥을 차려 먹는다.

처음에는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면 더부룩했는데 이제 익숙해졌다. 5년쯤 된 것 같다.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처제는 그 방법이 괜찮아 보여 도입해봤지만 가족들이 빵을 먹은 후 또다시 밥을 찾는다며 투덜댄다. 많은 사람의 생활패턴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다.



‘삼시세끼’의 여유로운 삶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하루 세끼 전부 챙겨 먹고 사는 삶이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한지 느껴본다. 출연자들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때 가 돼 배고프면 어설픈 솜씨로 챙겨 먹는다. 그런데 우리가 먹고 사는 실제 모습은 어떤가. 여러 이유로 하루 세끼를 다 챙기지 못하는 게 오늘날 도시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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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편의점 도시락도 직장인들한테 없어서는 안 될 품목이다. 그런데 아침시간에 먹기에는 좀 무겁고, 식사장소도 마땅치 않아 가벼운 샐러드나 빵, 음료 정도를 사서 출근한다. [사진 박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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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침 식사다. 아침을 잘 챙겨 먹는 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상식적으로도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점심을 정오에 먹고 저녁을 7~8시쯤 먹으니, 최소한 10시간 후인 아침 6시 정도에는 뭔가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직장생활 할 때 아침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동료들 가운데 70% 이상은 아침을 거른 채 출근하고, 회사 근처에서 대충 해결하는 사람을 제외해도 절반 정도는 밥 먹지 않고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 통계를 보니 직장인 42%가 아침을 거른다. 그 이유는 빠듯한 시간(80%), 그리고 귀찮거나 속이 불편하거나 입맛이 없어서(10%)였다. 전날 늦게까지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민망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아랫배가 묵직하고 시간은 촉박한데 아침까지 먹었다간 출근길에 배변 문제로 고생할까 봐 거를 때도 잦았다. 실제로 출근 도중에 신호가 와 아무 역에나 내려 화장실로 뛰어가 보면 늘 만원이다.

맞벌이 부부라면, 특히 아이 뒤치다꺼리까지 하려면 아침저녁으로 밥 차려 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누가 정성껏 식사를 차려줘도 늦잠 때문에 거르기도 한다. 그러니 열 시쯤부터 배가 고프다. 사무실에서 우유, 녹즙 같은 것을 배달시켜 빨아먹고 뭔가를 우물거려봐도 시원찮다.

점심시간에는 찌개가 끓기도 전에 밑반찬부터 집어먹고, 공깃밥을 추가한다. 그렇게 먹어도 배는 금방 꺼져 오후 시간에 사다리 타서 간식을 먹고, 그러면 또다시 입맛이 없어 저녁 식사가 늦춰진다.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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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항상 뭘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부질없다. 대부분은 그저 건강한 인생을 위해, 뭐라도 먹어야 하니 먹는 것이다. [사진 박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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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제대로 챙겨 먹기 쉽지 않았다. 원치 않아도 먹어야 할 상황(특히 술)이 있고, 일하다가 식사 때를 놓치기도 한다. 너무 잦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이다.

회사 일이라는 게 늘 움직이고 시달리고 신경 쓰고 욕먹다 보면 일단 열량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니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폭식하게 되고 뱃살은 점점 두꺼워진다. 주중 내내 바깥에서 기름지게 먹고 주말에는 가족을 위해 또다시 짜장면과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은퇴자 신분이 된 나는 요즘 하루 세끼를 꼬박 챙기는 ‘삼식이’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에게 별로 주눅 들지 않는다. ‘잘 먹겠다’는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주방에 가서 라면도 좋고, 누룽지도 좋고, 찬밥에 반찬 두어 가지로 해결해도 좋다. 뭐든 때우면 된다. 부부가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제대로 먹는 정찬은 하루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



아침을 밥 먹듯이 걸렀던 직장생활 시절



그러니 퇴직 후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해 보인다, 살 빠졌다”고 한다. ‘초식남’으로 먹고 사니 예전의 살집이 유지될 수 없다. 물론 에너지 소모가 적은 지금에야 먹는 양도 줄고 신나게 달려들 만큼 입맛 당기는 것도 없지만, 직장 다닐 때는 그러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왕성하던 나의 옛 모습만 기억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침을 꼬박꼬박 먹는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고, 부모가 지극 정성으로 챙기니 안 먹을 리 없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 ‘자유’가 생기면 차츰 아침을 거르기 시작하고, 직장인이 돼 바깥에서 얼마든지 사 먹을 형편이 되면 늘 아침을 거르고 나와 정작 밖에서는 배고파 허덕인다. 그러다 퇴직하면 다시 하루 세끼 꼬박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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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하면서 가장 많이 먹은 메뉴는 짜장면 아니었을까. 식사 시간을 놓치거나 같이 먹을 동료 없이 혼자 해결해야 할 때는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 한 그릇 후딱 먹고 나온다. [사진 박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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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할 때는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게 직장인의 인생이다. 돈 버는 ‘담당자’라 그렇다. 벽돌을 품에 가득 들고 있는 어떤 그림 속의 남자가 떠오른다. 벽돌을 들고 있어 아이를 안아줄 수 없고, 벽돌을 내려놓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삶. 마찬가지로 벽돌을 들고 있느라 밥을 굶고. 벽돌을 내려놓아도 밥을 굶을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직장인의 삶이다.

마음이라도 좀 여유롭게 가지면 나아지지 않을까. 정말 ‘먹고 살자고 하는 짓’답게 말이다. 뭘 먹든, 입맛이 있든 없든, 억지로라도 챙겨 먹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퇴직하면 그때부터는 삼시 세끼 챙겨 먹기 쉽다. 그때까지 요령껏 잘들 때우고 사시길.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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