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교수 “한국 사법부 판결은 기업과 개인의 문제, 일본 정부 개입은 옳지 않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9일 도쿄 자택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를 배웅하기 위해 서 있다. 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한일 간의 교류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정반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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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인 수출규제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한(對韓) 적대정책은 일본 사회에서도 강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등 사회지도층 78명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방침을 발표하기 직전인 7월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을 대립ㆍ반목하게 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아베 정부를 규탄한 바 있다. 수천 명의 일본인이 서명으로 화답하면서 성명은 일본 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성명을 주도한 양심은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하루키(81ㆍ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교수는 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도 “아베 총리가 한국을 믿을 수 없다고 배제하면서 (한일관계가)한일 수교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반목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다 교수는 특히 아베 정부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도 없이 마무리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불완전한 협정이었던 만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와다 교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억엔을 출연한 것은 문제가 모두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론한 뒤 “위안부 문제에서 불완전한 청구권협정을 보완하기 위해 자금을 출연하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와다 교수는 청구권협정이 불완전한 만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도 당연히 소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65년에는 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각종 요구를 거절하면서 불충분한 조약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면서 “청구권협정으로 한일관계가 새로운 물꼬를 트긴 했지만 (불충분한 조약을 감안하면)개인의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기업과 개인간의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에 일본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와다 교수는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 지식인으로 꼽힌다. 한일합병 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그의 평화 행보는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 민족운동가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을 추모하는 만해축전추진위원회가 와다 교수를 올해 만해대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12일 만해대상 시상식에 참석할 예정인 와다 교수를 방한에 앞서 9일 도쿄 자택에서 만났다.
_현재의 한일관계를 평가하고 원인을 따진다면.
“1965년 수교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1월 시정연설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한 관계 개선은 말하면서 한국은 무시했다. “이제 한국은 믿을 수 없으니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국의 민주화 이후 개선되던 한일관계는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체결된 위안부 합의를 부정한 것에 불신감을 가졌고, 북미회담을 이끌어낸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징용 문제, (일본 초계기의)레이더 조사 갈등도 영향을 미쳤다.”
_2015년 위안부 합의는 (한일관계에)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나.
“2011년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 본)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을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고, 고령의 할머니들이 계속 돌아가시던 상황에서 마지막 기회로 보고 위안부 합의를 지지했다.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거나 설득하는 조치가 없었기에 피해자들의 반발이 이해된다. 그러나 사죄의 뜻으로 10억엔을 낸 것은 나름의 진전이었다. 아베 총리는 사죄할 마음이 없었는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떠밀려 억지로 합의했다. 이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공통의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_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배 피해 배상이 모두 마무리됐다고 주장한다.
“1965년 한일조약 때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경제협력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후 징용, 위안부, 사할린, 원폭 피해자 등의 문제가 많이 나오게 됐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억엔을 냈다는 것은 문제가 바로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위안부 문제에서는 불완전한 청구권협정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10억엔을 내면서, 징용 문제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_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고 본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청구권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1965년 당시 한국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각종 요구를 거절하면서 한일기본조약은 불충분한 조약이 됐다. 하지만 조약을 맺어 한일관계가 시작됐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과 개인간의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다. 일본 국가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 일본 정부의 개입은 옳지 않다.”
와다 교수는 파탄 직전의 한일 관계를 이끈 장본인으로 아베 총리를 분명히 지목했다. 그는 한일 관계의 근본문제를 ‘일본의 식민지배’로 규정하면서 “일본은 한국에 손해를 입히고 상처를 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 국민 모두가 그런 역사인식을 갖지 않으면 정상적인 화해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정부 방침으로 한일병합 자체가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 반성 및 사죄가 완성된다”며 아베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_한국이 굴복할 때까지 수출규제를 계속하겠다는 게 아베 정부의 의도인지 궁금하다.
“일본은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다. 약품이나 부품 등을 수출하면 한국이 거의 다 만든 것을 수입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회사들도 큰일이다. 아베 총리의 행태는 자유무역을 통한 국제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다. 중미 무역분쟁 상황에서 일본에게도 마이너스다. 아베의 제멋대로 어린이 같은 행동에 대해, 일본에서도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라는 시각이 있다.”
_한국 정부가 한일 기업의 1+1 해법을 제시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부하면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정부 대 정부의 대화 보다는 한일 기업간 혹은 민간단체간의 대화가 중요하다. 민간의 대화를 양국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가 된다면 사태 해결이 진전될 수 있지 않겠나. 피해자 단체, 기업 등 민간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고, 한국 정부도 먼저 나서 지원한다면, 일본 정부가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_한국 내 불매운동이나 여행자제 등 반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본 제품이나 인적 교류, 여행 등을 보이콧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멈췄으면 좋겠다. 양국 국민 간의 교류가 정부간의 문제로 인해 나빠지는 것은 좋지 않다.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야 길이 열리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한쪽을 굴복시키자는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_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한국 정부도 화이트리스트 배제, 지소미아(GSOMIAㆍ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을 검토 중이다.
“일본이 식민지배를 반성해야만 하고, 북미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한국 측의 주장이 옳다. 그러나 일본의 무역제한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한국 쪽으로 정보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도 이익이 아니고, 경제적 대항조치로 수출하지 못한다면 한국에도 불이익이라 선택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3.1 독립선언처럼 일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해야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와다 교수는 아베 정부의 대한(對韓)수출규제가 일본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베 정부의 외교 실패도 거론했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 한국의 지도자가 모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 혼자만 김 위원장과 회담을 갖지 못해 한국에 화풀이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외교 실패로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가 (2020년)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_한일 갈등이 심화한다면 미국은 결국 일본 편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그렇지 않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로 인한 충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공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동맹국 간 충돌이 트럼프 정권에 있어선 곤란한 상황이다. 서로 타협했으면 하는 바램이겠지만 만약 사태가 장기화돼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적극적 반응이 나올 것이다. 북미 대화에 아베 총리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가 더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편에 서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_한일관계를 파탄에 빠뜨리지 않도록 양국 지도자가 신경 써야 할 대목이 있다면.
“아베 총리는 한일 국민들의 교류 관계를 끊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한일 국민을 반목시키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일본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 달라. 한국 국민들께도 말씀 드리고 싶다. 많은 일본 국민들이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전쟁을 싫어하며, 한국과의 관계가 좋아지길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믿어주길 바란다.”
도쿄=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9일 도쿄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글과 그림은 김지하 시인이 선물한 것이다. 와다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김 시인 구명운동 등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 나섰다. 도쿄=정반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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