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졌다시피, 이완용은 1910년 총리대신으로 정부의 전권 위인이 되어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는 등 민족을 반역했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자, 그는 3차례에 걸쳐 ‘매일신보’에 경고문을 실었다.
첫 번째 경고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선독립이라는 선동이 헛소리요, 망동이라 함은 각계의 뜻있는 인사가 천 마디 말을 했으나 자각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날 내가 말을 다시 하여도 여러분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스스로 의심하여 경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각’을 어린아이에 비유한다. “몰지각한 아이들이 몰지각한 행동을 하면 타이르고, 타일러도 순종치 않으면 책임을 묻고, 책임을 물어도 순종치 않으면 필경에는 회초리로 때려 가르쳐야 한다.”
2차 경고에는 동정을 섞었다. “매국노의 경고라 하여 자신의 안위에 관계 있는 말을 듣지 않음은 너무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천만 명 가운데 한 사람에게라도 유리하면 이 경고의 효과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마지막 3차 경고에 그는 세계사 흐름을 설득 논리에 끼워 넣고 일본 합병의 타당성을 열거한다. “하느님도 두 땅의 분립을 불허하실지니, 우리 조선인은 반드시 일한합병의 의의와 그 정신이 유효하게 실현할 방면으로 노력함이 우리의 장래 행복을 설계하는 최선의 정책인 줄을 깊이 믿을지어다.”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고 3.1 운동 때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은 ‘매일신보’에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라는 글을 실어 친일 운동에 앞장섰다. “오늘날 대동아인으로서 이 성전에 참여함은 대운 중의 대운임이 다시 의심이 없다”고 쓴 그는 우리 젊은이들을 의미 없는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은 “황국신민의 무쌍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됐다”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보일 기회는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천 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이라고 적었다.
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 중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수록된 67명의 글만을 다뤘다.
남으로부터 들은 소문의 친일 행적이 아닌, 글과 그림으로부터 증명된 친일 행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사회 지도층으로 살면서 권세와 부를 누렸다.
책은 어떤 주관적 판단도 배제한 채 오로지 ‘가장 발전된 역사편찬 체재’인 ‘기사본말체’로 사건을 기술했다. 친일파가 쓴 글이 강압이었는지, 자의에 이한 것이었는지, 눈앞의 이익 때문이었는지, 역사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친일파 명문장 67선=김흥식 지음. 그림씨 펴냄. 304쪽/1만49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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