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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줌인]'소녀상의 눈물'..세계 곳곳 소녀상 자리 빼앗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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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자 별세

'평화의 소녀상' 일본 자국 전시회 중단

독일에서도 철거 압박 드러나

"소녀상은 평화의 상징" 인정할 때

이데일리

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있다.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의 전시 중단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전시장은 닫힌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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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또 한 명의 ‘소녀’가 세상을 떠났다. 4일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90대 A 할머니가 별세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남긴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평화의 소녀상’의 눈물은 아직 치유되지 못했다.

‘평화의 소녀상’이 다시 일본의 공격을 받고 있다. 김운성·김서경 부부작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아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 일본 정부가 자국은 물론 독일에서도 전시장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조형물이 다시 악화하는 한일 관계의 중심에 놓였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는 ‘전범(戰犯)’ 일본의 집요한 압박으로 전 세계 전시관에서 쫓겨나는 소녀상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고 있다.

◇日 전시장에 갇힌 소녀상, 강제 철거 위기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이 일본의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출품된 지 3일 만에 사라졌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일방적인 통보로 관람이 막혔다. 현재 전시장 입구는 5m 높이 가벽으로 막힌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는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은 ‘기획전’이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개막 후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소녀상 전시는)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는 망언을 내뱉는가 하면, 스가 관방장관은 “예술제에 대한 보조금 교부 여부에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치권에서 압박하자 ‘표현의 자유’를 지키지 못했다. 주최 측은 하루 동안만 1000건 가까운 항의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졌고, 소녀상에 종이봉투를 씌우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변명만 늘어놨다. 여기에 일부 우익 세력은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 탱크를 몰고 전시장을 들르겠다”고 위협했다는 말도 나왔다. 현재 전시장 안에 갇혀 있는 소녀상은 언제 철거될 지 모를 운명이다.

일본의 소녀상에 대한 과민한 반응은 자국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베를린의 여성 예술가 전시관인 ‘게독’(GEDOK)이 지난 2일 시작한 ‘토이스 아 어스’(TOYS ARE US) 전시회에 소녀상이 출품되자, 주독 일본대사관은 게독 측에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공문을 보내 압박했다. 일본이 지난 2017년 초 독일 베를린 북부 브란덴부르크주의 소도시 라벤스브뤼크의 옛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10㎝도 안 되는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은 소녀상마저 철거하라고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일본은 앞서 2017년 3월 독일 비젠트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유럽 최초로 세워진 소녀상에 대해서도 철거를 요구한 바 있다. 그해 공원 측은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았지만, 소녀상을 설명한 비문을 없앴다. 재독동포 단체인 풍경세계문화협의회가 본에 있는 여성박물관에도 소녀상을 세우려고 추진해왔지만, 일본 측의 방해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016년에는 수원시가 자매결연을 한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일본 측의 항의로 무산된 적도 있다. 일본 측 인사들이 프라이부르크 시 당국을 찾아 강력 항의해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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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독일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전시됐다가 일본 측의 요구로 철거된 ‘작은 소녀상’과 같은 10cm 높이의 소녀상이 베를린 여성 예술인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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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남은 위안부 피해자, 눈물 닦아줘야

소녀상이 처음 세워진 것은 2011년 12월 14일.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놓였다. 2015년 박근혜정부의 ‘12·28 위안부 합의’ 후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크기도, 모양도 조금씩 다른 소녀상들이 전국에 세워져 현재 대한민국에 총 112개의 소녀상이 있다. 김씨 부부작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외 전시관에 소녀상을 설치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 소녀상이 일본에게 ‘눈엣가시’다. 보이는 족족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첫 소녀상이 세워진 계기가 됐던 수요집회는 1992년 시작돼 오는 14일로 1400회째를 맞는다. 27년 전 수요집회가 처음 열릴 당시 생존해 있던 238명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64세였다. A할머니에 앞서 지난 1월 김복동 할머니에 이어 곽예남 할머니(3월), B 할머니(4월) 등 올해 다섯 분의 할머니가 눈물을 닦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제 피해 생존자는 20명 밖에 남지 않았다. 대부분 아흔 살이 넘었다.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소녀상을 전 세계에 세울 거야. 일본의 사과를 꼭 받아낼 거야.” 영화 ‘김복동’에 담긴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이다. 3·1운동 100년을 맞은 올해, 일본의 경제 규제로 또 다시 ‘제2의 만세운동’이 국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양새다. “소녀상은 일본에서 반일의 상징으로 생각하는데 평화의 상징”(김서경 작가)이 실현될 때 소녀상은 눈물 대신 웃음을 지을 수 있을 터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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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나타내는 소녀상의 들린 발뒤꿈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한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옆에 빈 의자가 있는 모양이다. 거칠게 잘린 소녀의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강제로 단절된 것을 상징하고,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전쟁 이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방황을 의미한다. 소녀상 왼쪽 어깨의 새는 세상과 이어주는 매개체다.

소녀상의 또 다른 의미는 바닥에 그려진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에서 찾을 수 있다. 사과나 반성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버린 한이 서린 형상이다. 빈 의자는 세상에 아픔조차 드러내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빈 의자에 앉으면 고스란히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첫 제작 이후 국내외 여러 군데에 세워졌다. 김운경·김서경 부부작가의 소녀상을 기초로 조금씩 변했다. 서있는 모습도 있고, 서울 성북동의 ‘한중 평화의 소녀상’처럼 중국인 소녀와 조선인 소녀가 함께 있는 것도 있다. 나눔의 집에 설치된 소녀상 ‘못다 핀 꽃’은 피해자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을 기초로 피해자를 형상화한 첫 작품이다. 저마다 아픈 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할 현재, 함께 평화를 지향하는 미래 등 상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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