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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日 공공미술관의 '위안부 소녀상' 전시 "反日의 상징 아닌 평화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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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서 선보여

日 역린 건드려 철거된 작품 모은 '표현의 부자유展'의 후속편

1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예술문화센터 8층 A023 전시실. 입구에서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 메인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자 눈에 익은 소녀가 관람객을 바라본다. 가지런한 단발머리,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 무릎 위에 올려둔 꼭 쥔 주먹.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을 지키는 소녀와 꼭 같다. 소녀의 등 뒤엔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옆 자리엔 동석(同席)을 기다리는 빈 의자가 놓였다.

"소녀상 옆 빈자리에 앉는 건 용기가 필요했어요. 일본인으로서 아무 도움도 되어드리지 못했는데…. 소녀 옆에 앉아 앞으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른으로서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쿄 옆 가나가와현에서 2시간 걸려 왔다는 사토 가요코(29)씨가 말했다.

조선일보

일본 최대 규모 국제예술제 중 하나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가 개막한 1일, 행사장인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 8층에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돼 있다. /최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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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일본 최대 규모 국제예술제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의 개막일이었다. 2016년 관람객 60만명을 모은 일본 대형 예술 행사다.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달리는 와중에도 아이치트리엔날레는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가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에 자리를 내줬다. 소녀상이 온전한 크기로 일본 공공미술관에 전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서경씨는 "많은 일본분이 소녀상을 직접 보고, 소녀가 반일(反日)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녀는 나고야까지 오기까지 먼 길을 걸었다. 2012년 도쿄도미술관의 한 그룹전에 축소된 소녀상이 처음 출품됐지만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소녀상이 제대로 일본 관객을 만난 건 2015년, 도쿄 후루토(古藤)갤러리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展)'에서다. 일본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철거된 작품들을 모은 전시회였다. 소녀상이 출품된 이번 아이치트리엔날레 기획전 역시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라는 해당 전시의 후속편이다. 이 같은 취지에 걸맞게 소녀상 바로 옆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담은 안세홍 작가의 사진 8점도 걸려 있다. 2012년 카메라 브랜드 니콘이 자사 전시 공간 '니콘살롱'에 전시하길 거부했던 작품이다. 군마현에 전시됐다 철거된 조선인강제연행희생자추도비, 지바조선학교 학생들이 그린 위안부 합의 반대 그림도 출품됐다. 한국 관련 작품만 모인 건 아니다. 태평양전쟁의 책임을 히로히토 일왕에게 묻거나 오키나와의 미군기 추락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철거된 작품 등 총 17개 작품이 모였다. 전시품들의 성격 때문에 전시장 입구 옆엔 '촬영사진·동영상 소셜미디어 투고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촬영은 가능하다. 감상을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전시장을 찾아 소녀상을 관람한 일본인들에게 감상을 묻자 비슷한 답이 나왔다. "더 많은 일본인이 소녀상을 직접 보고, 역사를 마주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교육 관계 직종에 종사하다 은퇴했다는 나고야시 한 남성(77)은 "일본 정부가 젊은 사람들에게 역사 문제를 제대로 가르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전시인 만큼 그들이 소녀상을 보고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녀상이 아이치트리엔날레가 막을 내리는 오는 10월까지 이곳을 지킬 수 있을진 미지수다. '소셜미디어 투고 금지' 안내에도 불구하고 일본 소셜미디어는 들끓고 있다. 이날 오후 한때 트위터에 '아이치트리엔날레'를 검색하면 '아이치트리엔날레 위안부'가 자동 완성될 정도였다.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의 트위터에는 "아이치현민의 세금을 들여 어떻게 위안부상(소녀상)을 전시할 수 있느냐"는 항의 글이 쇄도 중이다. "항의 전화를 하자"며 아이치현예술센터의 전화번호를 공유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번 주말 예술센터 앞에서 극우 세력의 집회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김서경 작가는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태주는 많은 일본 시민이 있어 괜찮다"며 "항의 속에도 소녀상이 끝까지 이곳에 남는다면 일본에도 '표현의 자유'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고야=최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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