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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왜 송에 상감청자 대신 값싼 자기를 수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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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자 김영제 교수, '고려상인과 동아시아 무역사' 출간

연합뉴스

지난해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나온 유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중국 남송 시기인 1228년 저장성 경원(慶元, 오늘날 닝보)에서 편찬한 지방지 '보경사명지'(寶慶四明志)에는 고려가 중국에 판매한 상품 목록이 있다.

값비싼 품목을 뜻하는 '세색'에는 은, 인삼, 사향, 밀랍이 있다. 비교적 저렴한 '추색'에는 명주, 밤, 대추, 강황, 호피, 구리그릇, 돗자리와 함께 '푸른 자기'(靑器)가 포함됐다.

13세기에 고려는 이미 고급 상감청자를 생산했다. 하지만 청자는 세색이 아닌 추색으로 분류됐다. 고급 상품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송대 재정사와 동아시아 교역사를 연구하는 중국사학자 김영제 단국대 교수는 신간 '고려상인과 동아시아 무역사'에서 고려가 값싼 자기를 주로 수출한 이유를 중국 서적 '학림옥로'(學林玉露)에서 찾아 소개했다.

"내가 태학(太學)에 있을 때 듣기로… (중략) 건도(乾道)와 순희(淳熙) 연간에는 독서실도 소박했고, 음식을 먹는 그릇도 질그릇이었으며, 건물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고 한다."

건도와 순희는 남송 효종(재위 1162∼1189)이 사용한 연호다. 태학은 국립대학인데, 당시 식사를 자기가 아닌 질그릇에 했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중국에도 자기 그릇이 그다지 폭넓게 보급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값싼 자기에 대한 많은 수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돗자리도 마찬가지로 고급품보다는 값싼 물건이 주로 고려에서 송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송에서도 나오는 밤이나 대추를 고려가 수출했다는 점이다. 솔방울, 은행, 족두리풀도 양국 간 교역 대상이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수출용 상품 생산이 이뤄졌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그는 "고려는 남중국 시장에서 수요가 많고, 중국에 비해 가격 측면으로도 우위에 있던 일상품을 판매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중국에서는 값비싼 고려 돗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가짜 상품, 이른바 '짝퉁'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고려는 송에서 어떤 상품을 수입했을까. 고려시대에 나온 중국어 교재인 '노걸대'(老乞大)를 보면 갓끈, 바늘, 족집게, 장기, 바둑, 송곳, 비단, 서적 등이 고려로 들어왔다.

저자는 "바다를 통해 일반인들의 수요가 있는 다양한 일상품이 고려에 수입됐을 것"이라며 "중국 생산품뿐만 아니라 그밖에 다른 여러 나라 상품들도 고려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도 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물품을 주고받는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김 교수가 지난 10년간 발표한 논문을 재구성한 책에는 이외에도 계절풍과 범선 입출항, 한국·중국·일본 선박 특징, 선원 국적 판별 방법, 무역에 대한 송나라 태도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다양한 글이 실렸다.

푸른역사. 314쪽. 2만원.

연합뉴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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