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
80년대부터 국산 캐릭터 개발 선도
“좋은 디자인이 아이의 미래 바꿔”
박정식 바른컴퍼니 대표, 박영춘 회장, 박소연 비핸즈 대표. 박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 강원도 인제 산속 집에 살고 있다. 최근 인생 경영책 『0.1㎝로 싸우는 사람』을 출간했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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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진 금다래, 어수룩한 신머루는 절친한 소꿉친구다. 겁 많고 성미 급한 다래는 동작이 느린 머루를 늘 답답해 하지만, 사실 머루 없이는 아무 것도 못 한다. 그렇게 둘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니며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를 엮어간다.
동화책 이야기가 아니다. 1989년 바른손팬시가 국내 최초로 캐릭터 라이선스 사업에 뛰어들며 개발한 전통 캐릭터 ‘금다래, 신머루’에 대한 설명이다.
당시 ‘달러 도둑? 좋은 디자인 하나가 나라 경제를 키웁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제작하고 과감하게 디즈니 캐릭터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가 있다.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80) 회장이다.
바른손팬시가 개발한 국산 캐릭터들 |
국내 최초로 디자인 경영을 앞세워 바른손 카드·문구·팬시 사업을 벌였던 박 회장이 최근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책 『0.1㎝로 싸우는 사람』(몽스북)을 출간했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책 추천사에서 “박영춘 회장이 만든 ‘금다래 신머루’ 캐릭터 문구를 사용하던 기억이 또렷하다”며 “디테일까지 완성도를 챙긴 물건이 주는 감흥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꿈을 생각하기에 충분한 씨앗이었다”고 말했다.
1939년 춘천에서 출생한 박영춘 회장은 강원대 농대 졸업 후 가업을 잇기 위해 금속조각공으로 일했다. 서울로 상경해 을지로 인쇄골목에 작은 방 한 칸을 빌려 일을 시작한 그는 70년 바른손카드를 창립하고 사업 첫 해에 연하장 130만장을 팔아치우며 업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80년대엔 바른손팬시로 문구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고, 자체 개발한 캐릭터로 라이선스 사업도 벌였다. 어른은 빨간 내복, 아이는 흰색 내복이 전부였던 국내 내복 시장에 최초로 캐릭터 무늬가 들어간 것도 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처음부터 제품이 아닌 디자인을 팔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 온 국민이 카카오 프렌즈, 라인 프렌즈 캐릭터에 열광하며 ‘배달의 민족’이 만든 기발한 광고 영상과 포스터에 반응하는 걸 보면 박 회장의 뛰어난 예지력을 알 수 있다. 바른손 팬시 출범 10년 후인 90년대 자체 디자이너 수가 120명이나 됐다고 한다. 당시 바른손 광고 포스터엔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삽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미국의 세계적인 색체연구소 팬톤사의 컬러 칩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사진이 담겨 있다.
박 회장의 장녀인 박소연(58) 비핸즈 대표는 “아버지는 무엇이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며 “어느 날엔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온 베개 레이스가 예쁘다고 가위로 잘라 회사로 가져갔다”고 기억했다. 그는 또 “초등학교 가정환경 조사 때 ‘집에 피아노·TV 있는 집 손들라’고 하면 한 번도 손을 들어본 적 없는데 옷은 항상 예쁜 옷을 입었다”며 “백화점에 어머니와 나를 데리고 가 10번 넘게 옷을 갈아입게 하면서 아버지는 시장 조사를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막내아들인 박정식(49) 바른컴퍼니 대표도 “아버지는 늘 검정 티셔츠·바지·재킷만을 고집하셨고, 때문에 주위에서 멋쟁이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박영춘 회장의 미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국의 정서와 전통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일이었다. 박소연 대표는 “아버지는 한국의 건축·음식·나무·연못 등에 능통했고 고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며 “바른손이라는 사명도 ‘꼬마또래’ ‘실용선언’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한국어를 사용했는데 모두 아버지의 생각이었다”고 기억했다. 복식박물관에서 본 여성복의 색깔을 내기 위해 천연 안료를 사용하고, 고가구의 경첩을 활용하는 등 바른손팬시 곳곳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금다래 신머루’ 캐릭터 개발도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월간 디자인, 행복이 가득한 집 등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대표는 박영춘 회장과 40년지기다. 그는 박 회장을 “디자인 저변이 척박한 대한민국 산업 부흥기에 아름다움의 가치를 탐구했던 사업가”라고 기억하며 “한 번은 대원군 집터에서 나온 연못 돌을 사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보는 그의 남다른 감각이 부러웠다 ”고 말했다.
1998년 IMF 사태 이후 바른손팬시는 부도 처리됐지만 박영춘 회장은 60세 나이에도 e-카드 등의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고, 중국 진출 등 끊임없는 도약을 시도했다. 현재는 박 회장의 자녀들이 국내 카드 1위인 바른컴퍼니, 아트 프린팅 기업 비핸즈, 중국 상하이 법인 위시메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개척하면서 누적된 스트레스로 건강이 안 좋아진 박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강원도 인제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벗하며 요양 중이다. 반평생의 삶을 기억해내 1년간 조금씩 구술 정리하며 책을 쓴 이후, 건강은 더 악화된 상태라 이번 인터뷰에선 두 자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바른손창업 50년을 담은 책 발간에 대한 소회를 물으니 그는 “꿈같이 했다”고 답했다. 그만큼 후회 없이 일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좋은 디자인 하나가 아이들의 장래를 바꾼다”며 “보고 자란 것이 다르면 아이들의 장래가 달라진다”고 재차 강조했다. 지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지우개가 아니라, 쓰는 것으로 만족하는 연필이 아니라, 아이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감성을 높이는 디자인 제품들을 만들겠다며 달려온 80 평생. 인제의 집은 건축물보다 흐드러지게 핀 정원의 들꽃이 더 눈에 들어오도록 꾸며져 있었다. 그가 시간 날 때마다 살펴보는 소중한 컬렉션도 값비싼 청자·백자가 아니라 민가의 상여 장식인 ‘꼭두’였다.
강원도 인제=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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