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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매경춘추] 화타의 新의료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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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국 한나라 말기에 '화타'라는 의사가 있었다. 내가 정형외과 의사가 된 것은 어릴 적 읽은 삼국지에서 접한 화타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 '신의(神醫)'라고 불린 화타는 그 옛날에도 외과 수술에 능통해 훗날 '최초의 외과의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으니 어린 내겐 꽤나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화타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병을 진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그에 따른 약물 처방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특히 '마비산(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삼국지에 묘사된 화타가 환자를 치료한 사례들은 지금 의사인 내가 봐도 분명 놀라운 부분이다.

침술이 보편화된 의술이던 시대에 환자를 마취시키고 환부를 절개하고, 창자를 잘라 씻거나 상처 부위를 봉합하는 행위가 통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무엇보다 화타의 신(新)의료술이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흡사 기행(奇行)처럼 보였겠지만, 그의 손을 거친 환자 중에는 분명 완쾌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무척 경이롭다.

내 기억으로 삼국지에서 화타가 등장하는 장면은 두 곳이다. 먼저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치료하는데, 관우가 마취도 없이 태연하게 바둑을 두면서 수술을 받았다는 유명한 대목이다. 실제로 화타가 관우를 치료했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이는 관우의 용맹을 드러내기 위한 나관중의 상상이리라.

화타가 등장하는 다른 한 장면은 관우가 죽은 후 두통에 시달리던 조조가 당대의 명의 화타를 청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려면 마취를 한 뒤 두개골을 갈라 뇌를 드러내고 환부를 제거해야 한다는 화타의 말이 의심을 사고 나중에는 결국 조조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만일 그 시대에 화타의 신의료술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현재 우리의 '제한적 의료기술'처럼 말이다. '제한적 의료기술'은 새로운 의료기술 중 반드시 안전성이 확인된 의료기술로 대체 치료술이 없는 질환이나 희귀질환 등의 치료와 검사를 위해 임상에 신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는 의료기술을 말한다. 다만 신의료술이라는 점에서 임상적 유효성에 대한 근거가 미흡하므로 기간을 두고 한시적으로 허용한다.

그 시대에 제한적 의료기술과 같은 제도가 있었다면 조조는 자신의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심을 거두고 화타의 신의료술을 수용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화타가 권력자에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한 신의료술을 펼쳤으리라.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순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 의료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 스스로 새로운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고용곤 연세사랑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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