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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영화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도저히 만들 수 없던 그 대사, 전미선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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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철현 감독이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시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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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만들 수 없는 대사가 있어 고 전미선씨께 부탁했습니다. 소헌왕후가 세종에게 처음으로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백성들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습니다’라는 대사는 전미선씨가 직접 만드셨습니다. 세상 모든 지도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언론 시사회 직후 15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철현 감독은 지난달 세상을 떠난 고 전미선을 기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미선과 관련된 질문에 답변을 하다 “힘들다”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앞서 <나랏말싸미> 측은 영화에서 소헌왕후로 열연했던 전미선을 애도하는 의미로 이날 간담회를 제외하고 모든 홍보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 앞서 제작사 두둥의 오승현 대표는 “영화 흥행 여부를 떠나 고인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해 영화 개봉을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화를 많은 분들이 함께 보시고 좋은 영화, 최고의 배우로 기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개봉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시종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나랏말싸미>는 억불정책을 펴던 조선 초기, 세종(송강호)이 유학자들의 눈을 피해 언어적 지식이 해박한 승려 신미(박해일)와 함께 한글을 만드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년간 역사적 사료를 공부하며 ‘한글’을 소재로 한 영화를 고민해왔다는 조 감독은 “시간적 순서와 해석은 조금 바꾸었지만 가급적 사실에 기반해서 만들었다”면서 영화 내용에 자신감을 표했다.

앞서 도서출판 나녹은 <나랏말싸미> 제작사 두둥, 배급사 메가박스중앙, 조철현 감독 등이 책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평전>의 내용을 무단으로 참조했다며 법원에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날 두둥 오승현 대표는 “<나랏말싸미>는 원작, 원안이 없이 순수하게 창작된 작품임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출판사와도) 합의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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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감독(왼쪽부터), 배우 송강호, 박해일이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시사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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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감독은 승려 신미가 중심이 된 영화를 구상한 계기에 대해 “신미 스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확신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팔만대장경이 티베트를 거쳐 송나라, 거란, 여진, 고려, 일본까지 전파된 과정이 표음문자의 전파 경로와 일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영감이 됐다”면서 “실제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글의 발견>을 보면 아시아의 표음문자는 모두 스님들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승려 신미라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소헌왕후의 역할을 새롭게 강조한다. 조 감독은 “여자들이야 말로 대장부가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21세기 들어와 이제 권력은 여성에게 넘어갔거나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그래서 ‘한 명의 대장부와 두 명의 졸장부’를 중심으로 영화를 구상했다”면서 “물론 대장부는 소헌왕후”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선 소헌왕후의 죽음과 그를 기리는 천도재가 비중있게 다뤄져, 이를 연기한 전미선의 부재를 다시금 실감케 했다. 배우 송강호는 “천도재 장면을 촬영할 때, 사실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런데 촬영을 끝내고 나니 이런 일이 생겼다. 영화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있었다”면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슬픈 영화가 아니라 슬픔을 딛고 아름다움을 남기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결국 세종대왕에 대한 영화다. 지금까지 수차례 영화·드라마를 통해 재해석된 세종이기에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데 부담이 있었을 법도 하다. 송강호는 “세종이 우리의 글을 만드는 과정 자체나, 그 과정 속에서 세종이 느낀 군주로서의 고뇌와 어려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영화의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할 때도 그러한 방향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세종에 대해 “인간적으로 상처와 빚이 많은 인간, 동시에 병자이면서도 어려운 일을 해낸 성군”이라고 평가했다.

조 감독은 1999년 영화 <간첩 리철진> 기획자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이후 지난 30년간 걸출한 영화 제작자와 각본가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영화 감독 데뷔는 이번이 처음이다. 뒤늦은 나이에 영화 감독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30년 전, 영화를 시작하면서 이준익 감독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는 주말에는 가급적 연락하지 말자. 둘째는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영화의 본령에 도달하기 위해 도전하자. 두 번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제 첫 발걸음을 뗐다”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영화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110분. 전체관람가.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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