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Books팀장 |
기자 출신으로 2008년 창업해 중견 출판사를 일군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신간 발행과 관련하여 메일 쓰기는 처음"이라고 서두를 꺼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자기 이름으로는 집 하나, 혼인 하나 없이 떠난 '친구'의 책"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김인선(1958~2018). 30여년 전 잡지 '샘이깊은물' 편집부 동료 기자로 만났답니다. "직장 동료 중에 그런 느낌을 주는 친구가 있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그런 동료였습니다." 김인선은 잡지사에서 '당대 최고의 산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네요. 한창기 사장은 "이런 글은 교과서에도 실리면 좋겠다"고 감탄했답니다.
김 대표가 1980년대 후반 신문사로 직장을 옮긴 후 간간이 소식 듣다가 5년 전 다시 만났답니다. 경기도 어느 마을 헛간 같은 농가에서 '세상 바깥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네요. 몸에서 건초 냄새가 났답니다. 클래식 음반 해설을 번역하고 받는 돈 60만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였다네요. 김 대표는 "생활비와 취재비를 보조할 테니 글을 써보라" 했고, 그는 며칠 고민하다 "그러겠다" 했답니다.
몇 년 지나도 원고는 오지 않다가 지난해 메시지를 받았답니다. "내가 울 엄마 빼고 누구한테 이렇게 미안해본 적이 없지. 내 필히 부채와 신세 갚아요. 아주 오래 안 걸려요." 그는 며칠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언에 따라 남긴 원고를 엮어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당대 최고의 산문가'인지는 감히 평가 못 합니다. 두 사람의 우정과 배려가 마음을 울립니다.
[이한수 Books팀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