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500인 사업장에서 시작
12년만에 농어촌 등 전국민 확대
암 등 수천만원 병원비 부담 줄어
노인 진료비 30년새 130배
나이 들수록 건보 혜택 높아
기대수명 등 건강 지표도
대부분 OECD 평균 웃돌아
“의료보험증을 처음 받아볼 때 아이들 병원비 걱정 덜 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죠.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 한달 2천원가량이었던 보험료가 부담스럽기는 했어요. 그래도 2년 전 남편이 위암 치료를 받을 때 병원비가 많이 나오지 않아 의료보험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1970년대 중반 결혼하면서 서울로 이사 와 남편과 함께 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김아무개(65)씨는 1989년 여름 건강보험증(당시는 의료보험증)을 처음 받았다. 김씨가 건강보험(당시는 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 10대 초반이었던 자녀들이 어렸을 때 병원에 가면 수천원이 들어 큰 부담이 됐다. 가족들이 큰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았다. 김씨는 “다른 가족들처럼 의료보험증이 생겼다는 것이 참 뿌듯했다”며 “지금은 10만원에 이르는 보험료를 내지만 남편이 2년 전 암에 걸려 치료받은 걸 생각하면 의료보험이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암 치료비에 전셋값이라도 빼야 할 정도라고 들었는데,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수술받을 때 병원비는 100만원이 덜 나왔고 항암 치료비도 6차례에 모두 100여만원이 들었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 환자는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5%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10년 넘게 고혈압 치료를 받는 등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병에 걸려 걱정인데 다행히 의료보험 혜택이 커진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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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부터 김씨 같은 자영업자도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돼 올해 7월 ‘전국민 건강보험 30주년’을 맞는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부터 시작된 건강보험이 12년 만에 중소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어촌 주민, 도시 자영업자 등이 가입해 일부 빈곤층을 빼고는 전국민으로 확대된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나 개발도상국 등에서 부러워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건강보험은 무엇보다 노후 질병 치료의 안전판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시작된 이듬해인 1990년에는 우리나라가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196만명가량으로 전체 인구 4018만명 가운데 4.9% 수준으로 매우 젊은 나라였다면, 지난해 기준 전체 인구 5107만명 가운데 709만명이 노인으로 전체의 13.9%를 차지해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같은 기간 노인 진료비는 2403억원에서 31조6527억원으로 130배 이상 늘었으며, 전체 진료비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 8.2%에서 지난해 40.8%로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세계 최상위권 고령화 속도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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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인 진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건강보험 덕분에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병원비 비중은 1990년 59%에서 2016년 33.3%로 줄었다. 병원비가 1천만원이라면 한 가정이 1990년에는 590만원을 내야 했지만, 2016년엔 333만원만 부담한 셈이다. 낸 보험료에 견줘 받는 혜택도 크게 늘었다. 1990년에 1인당 한해 평균 3만1380원을 내고 보험 적용으로 4만8678원을 받아 약 1.6배의 혜택을 누렸다면, 지난해에는 61만1747원을 내고 123만8582원의 혜택을 누려 보험적용 급여비가 보험료의 약 2배에 이르렀다. 1988년과 1989년에 각각 가입한 농어촌 지역 주민과 도시 자영업자는 직장인이나 공무원·교직원보다 평균나이가 더 많았기 때문에 건강보험 혜택을 더 이른 시기부터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노후의 안정된 삶에 꼭 필요한 제도로 발전한 장기요양보험도 혜택을 받는 노인이 2008년 21만4천명에서 2017년 58만5천명으로 늘어 전체 노인 12명 가운데 1명꼴로 혜택을 누리게 됐다. 요양보험 혜택은 이용 노인 1인당 한달 평균 110만원으로 지난 10년 사이에 25%가량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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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우리나라 건강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기대수명의 경우 1990년 71.7살에서 2017년에는 82.7살로 11살 높아졌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 78.6살(2016년), 영국 81.2살(2016년), 독일 81.1살(2016년) 등 주요국보다 높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80.8살 이상이다. 영아 사망률도 1970년에는 출생아 1천명당 45명이 출생 뒤 1년 안에 숨졌다면 2016년에는 2.8명으로 줄었다. 1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1970년에는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치인 20.1명의 2.2배가량이었다면 2016년에는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치인 3.9명보다 더 적다. 암에 걸려 5년 이상 생존하는 확률인 암 생존율도 크게 개선됐다. 1993~95년에는 암 생존율이 41.2%로 암 환자 10명 가운데 6명 정도가 5년 안에 숨졌지만, 2012~16년에는 암 생존율이 70.6%로 암 환자 10명 가운데 7명은 5년 이상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2010~14년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치인 62.8%보다 높다.
건강보험의 발전으로 병원비 걱정에 병원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개선되면서 각종 보건의료 지표가 좋아진 것이다. 신영전 한양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난해 나이대별로 보면 건강보험 보장 비율은 19~44살에서는 50%에 그친 반면, 65~74살은 67%, 75~84살은 69%, 85살 이상은 71% 등으로 노후에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며 “과거 두레 등 상호 부조 정신으로부터 출발해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원산노동병원과 같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의료보장 노력 등이 모아져 추진된 건강보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복지제도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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