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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스님 되기 힘드네"… 풋중들의 좌충우돌 수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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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비구니]

"고기 다 탄다, 뒤집어라" 잠꼬대… 곡차만 마시다가 눈 떠보니 절…

25년간 사찰 寺報 '청암'에 실린 스님들의 이야기 추려내 책 발간

"중[僧]은 변(便)에서도 중 냄새가 나야 한다."

방학을 맞아 찾아간 경북 봉화 축서사 어른 스님이 건넨 말씀이다. 비구니 스님들은 새삼 출가 수행의 무게를 느꼈다.

조선일보

도토리 껍질 까기 - 청암사는 많은 부분 자급자족한다. 청암사 승가대학 스님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묵을 쑤기 위해 도토리 껍질을 까고 있는 모습. /청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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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청암사 스님들이 사보(寺報)인 계간 '청암' 100호 발간을 기념해 '청암사 승가대학 비구니 스님들의 좌충우돌 수행 이야기'(민족사)를 펴냈다. 1994년 1호부터 올해 100호까지 350여편 글 가운데 80여편을 추렸다. 승가대학은 전국의 사찰로 출가한 이들이 4년간 모여 기본 교육을 받고 정식 스님이 되는 곳. 비구니 승가대학은 동학사 운문사 봉녕사 그리고 청암사 등 전국에 4곳이 있다. '속세 물을 중 물로 바꾸는 염색 기간'이다. 각각 가풍(家風)이 다른데, 청암사는 '솔직 담백'이 특징. 책엔 이제 막 출가한 '풋중'들의 순수한 초발심(初發心) 향기가 진하다. 수록 기준은 오직 '글의 밀도'만 따졌다. '우리 생활을 이렇게 다 이야기해도 되나'는 걱정이 있었다고 한다. 덕택에 속세에선 좀처럼 알 수 없는 비구니 승가대학의 내밀한 생활을 생생히 살필 수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고기 다 탄다, 뒤집어라!" 어느 날 한 스님의 잠꼬대에 승방은 뒤집어졌다. 각자 사회에선 귀하게 자랐던 출가자들. 출가 사연도 제각각이다. '세상이 재미없어 곡차(술)만 마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절이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경우도 있다. 머리 깎고 한 방에서 공부하고 잠자는 공동생활은 낯설고 힘들다. '중물 들이기'는 쉽지 않다. 절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도토리를 주워 까고 갈아 체에 걸러 묵을 쑤고, 지붕에 올라 기와도 갈아야 한다. 가마솥에 밥 짓기는 공부보다 어렵다. 어른 스님과 선배 스님들의 물음엔 '예' '아니오'로만 답해야 한다. 때론 의욕이 넘쳐 상기(上氣)병을 겪기도 한다. 어른 스님들은 "부지런히 익혀 뼈에 박히고 피에 흐르도록 하라"고 권한다.

조선일보

비구니 스님들이 마당에 쌓인 눈을 쓸다가 깡총 뛴 모습을 촬영했다. /청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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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물이 들어가는 행복

이런 과정이 차츰 익숙해지면 변화가 생긴다. 우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목탁 소리, 죽비 소리뿐 아니라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 부드럽게 젖은 흙이 고무신 바닥을 찰박찰박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학 때 시외버스에선 처음 보는 이가 1만원 지폐를 주면서 무심한 듯 "이거 스님 하시거나 주고 싶은 분 주십시오"라며 격려한다. 어른 스님 방에서 지금도 돌아가는 '금성 선풍기'가 정겹고, "행복이란 이런 걸까? 이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서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고백할 정도가 된다.

어른 스님들은 "수행이란 별거 아니다. 내가 남의 꼴을 얼마나 잘 보아 주는가이다. 내가 남의 꼴을 잘 봐주어야 남도 내 꼴을 잘 봐주는 거다"라고 말씀한다. 이런 말씀을 들으며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이곳 청암사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냥 젖어들자"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보다는 행복한 수행자가 되자"고 다짐한다. 외국 출신 스님은 한 선배 스님이 벽에 써놓은 구절을 마음에 새겼다. '포기라는 말은 배추를 헤아릴 때만 필요한 것이다.'

'청암' 편집장 혜소 스님은 "책에 수록된 글은 모두 '몸으로 쓴 글'"이라며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다가 인생 잘 살아보고 싶은 이의 손에 걸려 출가 공부의 불씨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고 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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