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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정글 모_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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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98] 1. 모두 '부니 햇(Boonie Hat)'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베트남전 당시 미군 병사들은 자신들에게 지급된 모자를 분덕스 햇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중에 명칭이 정글 햇으로 썬 햇으로 바뀌었어도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들 '부니 햇(Boonie Hat)'이라 부른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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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부니 햇을 쓰고 있는 호주군 병사들 /출처= ⓒ호주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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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발음이다. '분덕스'의 'dock'은 '개'를 뜻하는 'dog'와 발음이 비슷하다. 베트남전에서 'dog'는 초짜 신병, 애먼 전우를 물고 늘어지다가 함께 죽는 골칫덩어리를 뜻하는 속어였다. 병사들은 이 발음을 하면 재수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분덕스 햇' 대신 발음이 대충 비슷한 '부니 햇'으로 불렀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좀 특이한데, 어느 유대계 미군이 분덕스 햇을 보고 '어? 이거 우리 고향의 시골뜨기 모자잖아?'라고 말한 것이 명칭으로 굳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유대인이 쓰던 '성도의 모자(‘כובע הטמפלרים)'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귀환했다. 그중 주변국 영토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인들은 육로를 따라 이동했다.

이동하는 이스라엘인들은 독특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태양의 열과 빛으로부터 머리와 눈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든 고깔 모양의 것이었다. 유대교 전통 모자인 '키파(kippah)'에 챙을 연결한 형태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를 '성도의 모자('כובע הטמפלרים)'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랍인들은 이를 '촌뜨기 모자(כובע טמבל)'라고 불렀다. '성도'와 '촌뜨기'의 발음이 각각 /templar/와 /tembel/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실제 쓰고 있으면 촌뜨기처럼 보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스라엘인들도 이 모자를 '촌뜨기 모자'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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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모자를 쓰고 있는 이스라엘인들 /출처= ⓒdbs.bh.org.il


위의 사진이 이스라엘의 촌뜨기 모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베트남전 초기에 보급된 분덕스 햇과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분덕스 햇을 처음 본 유대계 미군과 그의 동료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분덕스 햇을 본 유대계 미군이) "어? 이거 우리 고향에서 쓰던 'כובע טמבל'잖아?" "그게 뭐야?"

"응, טמבל는 이스라엘어인데 영어로는 boonie(촌뜨기) 정도 되겠다." "아, 그럼 'boonie hat'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먼."

3.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형이 쓰던 낚시 모자

아래의 두 사진을 보자. 컬러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같은 디자인이다. 왼쪽은 미군의 부니 햇이다. 오른쪽 사진은 한 패션쇼에서 선보인 '버켓 햇(Bucket Hat)'이다. 외형적으로 매우 유사한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 같은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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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부니 햇, 우측은 버켓 햇이다.


일반적으로 '버켓 햇은 아일랜드의 어부들이 쓰던 모자에서 유래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외형의 유사성을 제외하면 버켓 햇과 아일랜드 어부 사이에는 별 연관성이 없다.

그보다는 '버켓 햇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아버지, 형이 쓰던 부니 햇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베트남전 참전자들은 전장에서 쓰던 부니 햇을 일상에서도 요긴하게 썼다. 왜 아닐 것인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작업을 하거나 낚시를 할 때 이보다 실용적인 모자는 없었다. 심지어, 참전자 중 일부는 반전 시위에도 부니 햇을 쓰고 나갔다.

그리고 어느 하루, 자녀 혹은 동생이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그 모자는 뭐라고 불러요?"

"이거 B...... (차마 Boonie Hat, 즉 촌뜨기 모자라고 말하지 못하고), 이거 B... Bucket Hat이야. 버켓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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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반전 시위 장면. 베트남전 참전자들이 부니 햇을 쓰고 대열에 동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elyzc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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