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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ASEAN Trend] 양현석이 공들인 태국 젊은 부호 누구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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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YG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 가운데 하나가 해외 투자자 성접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지난 2014년 7월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투자자를 한국에서 만나 성접대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양 전 대표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건은 소속가수의 마약 스캔들이 불거지며 관심 밖에서 멀어진 듯하지만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 중 하나는 해외 투자자의 면면이다. YG가 접대를 했다고 알려진 이들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젊은 부호들이다. YG의 주 타깃 시장 중 하나가 동남아인 것을 감안하면 별 이상할 것 없는 만남일 수 있지만, 양 전 대표가 직접 상대하기엔 격이 맞지 않다는 느낌도 있다. 현지에서 부호의 반열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들 투자자들은 30대의 젊은이들이다. 물론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 순 있다. 그렇다면 뭔가 양현석 대표의 관심을 끌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 YG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거나 고민했다는 소식도 없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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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현석 전 대표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 단초를 제공했을까. 답은 이들 투자자들의 든든한 ‘뒷배’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거센 한류의 시작은 동남아시아에서였다. 태국에서 시작된 한류가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이후 세계로 전파됐다. YG의 성장도 이런 흐름을 잘 활용한 측면이 강했다. YG가 새 그룹을 내놓을 때마다 현지 출신 가수를 포함시키는 것도 마케팅 측면에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2PM의 닉쿤이 태국 출신이고, 2NE1의 산다라박은 필리핀에서 살았었다. 가장 최근 등장한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에도 태국 출신이 포함됐다는 사실은 YG가 여전히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 시장을 주요한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YG는 동남아 현지에서 다양한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한 예로 YG는 계열사를 통해 푸드 사업도 동남아에서 진행하고 있다. 태국 내 대형 쇼핑몰인 쇼디시(Show DC)에 빅뱅카페 등 자사 소속 연예인을 테마로 레스토랑, 펍을 한국 루프톱 문화와 결합시킨 YG리퍼블릭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한류 흐름에만 기대어 YG가 동남아 현지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현지에도 기득권 세력은 있고, 해외 영향력 있는 회사라 할지라도 현지화는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구조가 투명하지 못한 곳일수록 더욱 그 사회에 안착하는데 걸림돌이 많다. 소속 연예인들의 글로벌 인기몰이에도 불구하고 YG도 이런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믿을 만한 파트너가 있다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양 전 대표가 만난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투자자들은 괜찮은 현지 파트너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이들은 현지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가문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태국 투자자는 버닝썬 스캔들에도 연루된 ‘밥’이란 이름의 젊은 기업가다. 요식업으로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할 것은 그가 태국에서도 꽤 괜찮은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의 정식 이름은 차와난 라타꾼으로, 이 가문은 태국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집안이다. 특히 밥의 할아버지는 부총리를 지냈고, 민주당 대표도 지낸 유력 정치인이다.

매일경제

YG리퍼블릭이 태국에 문을 연 K-PUB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한 현지인은 “밥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집안은 태국에서 아주 유명하다”며 “정·재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 라타꾼 패밀리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30대 젊은 기업가의 위상(?)은 태국 현지 신문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을 표기할 때 ‘하이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말은 하이소사이어티(High Society)의 태국식 표현이다.

한 현지 교민은 “가문도 좋고 재력도 있는 인사들 앞에 주로 붙인다”면서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가문이 좋아도 재력이 없으면 잘 쓰지 않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가문이 좋은 젊은 태국 기업인이 과연 자력으로만 성공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지난 달 태국 현지에서는 쁘라윗 윙수완 현 부총리의 재산 규모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느닷없이 그가 아시아에서 제일 부자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자국 부총리가 아시아 제일 부호라는 소식에 태국은 발칵 뒤집혔다. 사실 여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태국 권력자의 힘과 부패의 정도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쁘라윗 부총리는 2018년 20개가 넘는 명품시계를 번갈아 차고 다니다가 태국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발견돼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다. 2014년 군부 쿠데타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그의 명품시계 스캔들은 개혁과 부패 척결을 내세운 현 집권 세력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일수록 유력자들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는다면 그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만큼 사회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현지 사업가는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 쉽게 사업을 진행하려면 현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관계를 잘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의외로 이들 현지 인사와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밥과 동석했던 말레이시아인인 조 로우도 양현석 전 대표와 만날 당시 자국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조 로우의 힘은 당시 총리였던 나집 라작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나집 전 총리의 양아들과 친분이 깊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영투자기업인 1MDB의 자금을 마음대로 주무를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초대형 부패 스캔들인 1MDB의 당사자가 됐고, 지금은 국제적 지명수배자다. 조 로우가 양 전 대표를 만났을 당시는 나집 전 총리가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 같은 사정은 비단 이들 두 국가뿐만 아니다. 동남아 각국의 사정이 거의 비슷하다. 한국 기업들이 밀물처럼 밀려가고 있는 베트남도 ‘연줄’은 무시 못 한다.

베트남과 연관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베트남에서 가장 확실한 네트워크는 공산당과 관련된 인물”이라면서 “실제 베트남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당 출신들”이라고 전했다. 이 인사는 “베트남에서 뜨고 있는 젊은 기업가들 중에는 당과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부모를 둔 이들이 꽤 있다”면서 “베트남도 중국의 태자당 같은 그룹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렇다 보니 현지 사정을 모르는 기업인들을 속여 “이 라인을 소개해 주겠다”며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도 베트남 취재를 갈 때마다 베트남 총리와 끈이 닿은 인사들이 꼭 나타났다. 이들은 인터뷰를 자신했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은 없다.)

필리핀은 아예 특정 가문들이 지배하는 사회다. 지역별로 가문들이 나뉘어 실질적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마르코스, 아키노, 아로요, 마카파칼, 오스메냐 등이 대표적 가문이다. 이들의 지배력은 공고해 권력이 바뀌어도 전혀 흔들림 없는 부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 현지 기업가는 “이들 가문과 손잡고 사업을 하는 것은 안전판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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