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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조종사 `어벤져스`가 만들어낸 184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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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파일럿 도전기-111] 1989년 7월 미국 아이오아주의 수시티 공항에 유나이티드 항공기가 불시착한 뒤 화염에 휩싸였다. 기체 결함이 생겨 2번 엔진이 파손돼 유압 계통 자체가 작동 불능이 됐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 정도 문제가 생기면 전원 사망이란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날 활주로에서 탑승객 296명 중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 무려 184명이 생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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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 232편의 기장인 헤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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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자기 일어난 엔진 고장

미국 덴버에서 이륙해 시카고를 경유해 필라델피아로 도착할 예정이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상공을 지나가고 있었다. 곧 이어 조종사들은 기체에 심각한 결함이 생겼다는걸 알아차리게 된다.

비행 중에 기체 두 번째 엔진이 정비 불량 때문에 파손되는 바람에 유압 계통이 고장나 방향타나 승강타를 조종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게 어떤 상황이냐면 차 운전에 비유하면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핸들이 고장난 것과 마찬가지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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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항공기에서 3살 아이를 구출하는 구조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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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종사 '어벤져스' 출동하다

하지만 승객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돼준 조종사들이 있었으니…. 당시 232편의 기장이었던 알프레드 헤인스는 무려 3만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중 7000시간을 DC-10에서만 보냈다. 부기장 윌리엄 레코즈도 총 2만시간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마침 그 비행기에는 승객으로 탑승한 유나이티드 항공 훈련센터의 교관 데니스 피치 기장도 있었다. 그는 4년 전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이후 유압 계통이 파손됐을 때의 조종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엔지니어까지 포함해 조종실에 앉아 있던 3명과 피치 기장까지 4명의 조종사는 악천후 속에서 엔진의 추진력만을 이용해 방향과 고도를 조절하기로 한다. 예를 들어 오른쪽 엔진의 힘을 그대로 유지한 채 왼쪽 엔진의 출력을 낮추면 기체가 왼쪽으로 휘고, 양쪽 엔진의 출력을 동시에 높히면 속도가 빨라지며 기체에 가해지는 양력이 증가해 고도를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말이 쉽지 자동차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고속도로에서 핸들이 고장났는데 뒤에서는 쓰나미가 덮쳐와 속도를 못 줄이는 상황에서 비상대피소까지 다른 차들을 액셀과 브레이크만으로 추월하면서 가야 하는 상황 정도 될 것 같다.

여분의 연료를 모두 버린 그들은 우선회를 계속하면서 악전고투 끝에 인근 아이오와주 수시티 공항에 겨우 도착해 착륙을 시도한다. 하지만 엔진 추진력만으로 기체를 제어해야 했기에 진입 속도는 굉장히 빨랐고, 결국 활주로에서 크게 미끄러지며 대파되고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소방구급대의 신속한 구출 활동으로 결과적으로 탑승객 296명 중 184명이 살아나는 기적을 낳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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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되어 화염에 휩싸였지만 탑승객의 절반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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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항공사고 생존의 이유는

유나이티드 232편 추락사고는 항공 트레이닝 과정에서 리더십 그리고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때 단골로 등장하는 케이스다. 급박한 위급 상황에서도 조종사들끼리 서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잘 대처한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은 엔진 고장 후 비상 착륙까지 34분 동안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집단지성을 구축했다. 비행기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비행기의 손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어디에 어떻게 착륙할 것인지, 승객들에게 안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으며, 상황에 대해서 적절하게 전파해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했음이 음성기록 장치를 통해 밝혀졌다. 1분에 평균적으로 31회 의사소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184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전체 탑승객 중 반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유압 계통이 전부 나간 상태에서 전원 사망이 아니고, 심지어 공항에 접근해서 착륙 시도까지 했다는 점에서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이다.

다행히도 이들 조종사 4명은 전부 생존했다. 나중에 승객으로 탑승한 기장이었던 피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전 최선을 다했고, 제가 모든 승객들 생명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내 목숨과 그때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목숨을 바꿀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러고 싶습니다."

[Flying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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